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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온 역병, 400년 전 그때도…‘조선, 역병에 맞서다’

입력 | 2020-05-11 15:45:00


영조 50년, 현직 관리를 대상으로 실시한 특별시험 ‘등준시(登俊試)’의 무과 합격자 18명의 모습이 담긴 초상화첩인 ‘등준시무과도상첩’ 중 유진하(柳鎭夏·1714∼?), 감상옥(金相玉·1727∼?), 전광훈(田光勳·1722∼?) 등 세 명의 초상화에서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바로 얼굴에 있는 피부병으로 생긴 이른바 ‘곰보’ 자국이다. 당시 마마(??)로도 불리면서 공포의 대상이 됐던 전염병인 두창(痘瘡·천연두)으로 인한 흉터다. 합격자 18명 가운데 3명이 이로 인한 흉터를 평생 간직할 정도로 그 당시 이땅에 두창이 널리 퍼져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뿐 아니라 국왕도 자식을 전염병으로 잃었다. 정조와 의빈 성씨 사이에서 태어난 장자인 문효세자(文孝世子·1782∼1786)의 장례 기록인 ‘문효세자예장도감의궤’에는 왕세자의 사망원인이 쓰여있다.

1786년 여름 한양에는 대규모의 홍역이 유행해 궐 안까지 퍼지면서 문효세자도 홍역을 앓았고 다행히 5월 6일 증세가 회복돼 종묘에 이를 알리는 의식을 정했다. 그러나 나흘 뒤 병세가 갑자기 심해져 결국 5월 11일 창덕궁 별당에서 숨을 거뒀다.

정조는 아들을 잃은 슬픔이 컸음에도 홍역이 창궐한 때인데다 영남지방에 흉년까지 든 점을 고려해 묘역을 장대하게 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이처럼 400년 전 이래 조선 땅에서 역병을 맞은 이들의 삶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된다. 가라앉는 듯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다시 되살아나면서 여전한 일상의 두려움이 지속되고 있는 현재와 중첩해볼 수 있는 역사다.

한반도를 휩쓴 천연두와 홍역 등 전염병의 공포와 그 속에서 치료법을 담은 의서와 긴급 구호 등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 했던 조정의 노력, 신앙의 힘을 빌어 치유받고 싶었던 백성들의 속내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 6일 이 같은 유물들을 전시한 테마전 ‘조선, 역병에 맞서다’를 개최했다. 전시는 다음달 21일까지 진행된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전염병의 공포에 어떻게 대응해 나갔는지를 조명한다. 1부 ‘조선을 습격한 역병’에서는 조선시대 유행했던 대표적인 전염병을 소개하고 역병에 희생된 사람들과 역병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1774년(영조 50) 제작된 등준시무과도상첩은 김상옥, 전광훈, 유진하 등 당시 조선시대에 만연했던 두창의 위력을 짐작케 한다.

또 두창으로 죽은 아이들의 묘지명, 조선 중기의 예학자 정경세(鄭經世·1563∼1633)가 두창에 감염돼 죽은 아들을 기리며 쓴 제문(祭文) 등이 전염병의 참상과 슬픔을 전한다.

특히 정경세는 관직을 얻은 아들이 한양에 올 경우 감염될 것을 우려해 아들이 병을 얻었다고 핑계를 대고 한양에 올라오지 않게 하려 했지만 왕명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여겨 아들을 한양으로 맞았다. 그러나 그 아들은 결국 두창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제문에는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아버지의 심정이 애절히 담겨있다.

이 밖에 지도를 통해 당시에도 역시 중국을 통해 전염병이 주로 유입됐다는 점 등도 살펴볼 수 있다.

2부 ‘역병 극복에 도전하다’에서는 17세기 초 온역(溫疫·티푸스성 감염병), 18세기 홍역 등 새로운 감염병의 출현에 대응한 조정의 노력을 조명한다.

‘신찬벽온방’(보물 1087호·허준박물관)은 1613년(광해군 5년) 광해군의 명으로 허준이 편찬한 전염병 전문 의서다. 1612∼1623년 조선 전역을 휩쓴 온역에 대응하는 지침서의 성격으로 허준은 이 책에서 전염병의 원인으로 자연의 운기의 변화와 함께 위로받지 못한 영혼(여귀·?鬼), 청결하지 못한 환경, 청렴하지 않은 정치 등을 꼽았다.

허준은 전염되지 않는 방법으로 ▲환자를 상대할 때 반드시 등지도록 할 것 ▲독기를 빨리 밖으로 뱉어낼 것 ▲종이심지로 콧구멍을 후벼 재채기를 할 것 ▲병이 걸린 사람의 옷을 깨끗하게 세탁한 후 밥 시루에 넣어 찔 것 등을 말하기도 한다.

‘제중신편’은 어의 강명길이 정조의 명을 받아 편찬한 종합의서다. ‘동의보감’ 이후 변화와 발전된 의학 이론과 민간의 임상 경험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를 새로운 표준의서로 제시하여 민간의료를 지원하고자 한 뜻이 담겼다.

흉년과 전염병으로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긴급 구호 명령인 ‘자휼전칙’도 전염병의 공포를 약자에 대한 보호와 공동체 의식으로 극복하고자 역사의 지혜를 보여준다.

3부 ‘신앙으로 치유를 빌다’에서는 전염병의 공포를 신앙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백성들의 마음을 살펴본다.

조선시대 내내 위협적이었던 두창은 질병 자체가 고귀한 신으로 받들어져 호구마마, 호구별성 등 무속의 신이 됐다. 괴질이 돌 때 역할을 한 ‘대신마누라도’(가회민화박물관), 전란과 역병 같은 국가적 재앙에서도 구원해 준다고 여긴 석조약사불(국립대구박물관)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지난 4개월 동안 겪어온 것들에 대한 역사적인 의미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차원에서 만든 전시”라며 “조선시대 때의 지도자나 백성들이 겪은 지혜와 휴머니즘 등을 상하 구분 없이 살펴볼 수 있는 내용이 담겨있다. 작은 전시이지만 메시지가 주는 의미는 크다”고 강조했다.

유새롬 학예연구사는 “훨씬 공포스러웠던 당시의 전염병 상황을 지금도 되새겨볼 만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