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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 명부’ 막을 수단 없어…실내 밀집시설 출입자 관리 허술

입력 | 2020-05-12 21:12:00


12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PC방. 출입문 앞에 이용자 신상을 적는 명부와 손 소독제가 비치된 카트가 놓여 있었다. 감염 위험이 높은 실내 밀집시설에 이용자 명부를 둘 것을 권장하는 방역수칙에 따른 것. 그러나 명부를 적지 않고 이용권 발매기를 사용해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명부가 외진 곳에 놓여 있어 직원이 작성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기도 어려웠다. 다른 인근 PC방은 명부에 발열 및 호흡기 증상 여부를 체크하는 공란이 있었지만, 정작 체온 측정을 하지 않았다. 이날 동아일보 취재팀이 둘러본 PC방 가운데 이용자 신상을 제대로 확인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최근 서울 이태원 클럽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 감염이 터졌지만, 허술한 출입자 관리로 방역에 애를 먹고 있다. 클럽 이용자들이 명부를 허위로 기재한 탓에 이들을 추적하기 위해 정부가 막대한 행정력을 동원해야 하는 상황. 현행 방역규정상 다중이용시설 이용자가 명부에 개인정보를 허위 기재해도 제재할 수 없는 건 문제라는 지적이다.

○ 공공시설도 출입자 관리 빈틈

출입자 관리가 허술한 건 공공시설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오전 경기 수원시내 한 보건소는 방문객이 작성한 전화번호, 주소를 확인하고 발열 여부를 확인했다. 그러나 명부에 기재한 개인정보와 신분증을 대조하는 절차는 없었다. 의심환자들이 수시로 찾아오는 곳임에도 얼마든지 개인정보를 허위로 적을 수 있는 셈이다. 해당 보건소를 찾은 임신부 신모 씨(32·여)는 “유증상자들이 드나드는 곳인데 출입자 관리가 허술한 건 문제”라며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신분증을 확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허위 명부’ 막을 수단 없어

다중이용시설에서 보여주기 식으로 이용자 관리를 하고 있지만, 생활방역 지침 자체가 권고사항이라 정부가 이를 강제할 수 없다. 클럽 등 유흥시설만 8일 보건복지부 장관 행정명령에 따라 이용자 명부를 작성 관리해야 한다.

방역 전문가들은 집단 감염 위험이 높은 다중이용시설에서는 정확한 이용자 정보를 받아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생활방역 지침에 ‘가급적’ 명부를 작성하라고 돼 있는데, 이를 ‘반드시’로 바꿔야 한다는 것. 특히 방역당국이 개인정보를 어디까지 보호하고, 어디까지 처벌을 동반한 의무사항을 부여할 것인지 등에 대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는 “사업장에서 명부를 정확하게 작성하고 있는지 정부가 불시에 점검을 벌여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역당국도 출입자 명부가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명부를 허위로 작성할 때 처벌을 법제화하는 건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방역총괄반장은 12일 브리핑에서 “명부를 허위로 작성했을 경우 처벌할 수 있다는 내용은 적시가 되지 않았다”며 “허위 작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강구 중”이라고 밝혔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수원=이경진 기자 lk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