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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어린이과학동아 별별과학백과]연구용 뇌 저축하는 ‘뇌은행’을 아시나요?

입력 | 2020-05-13 03:00:00

인간의 뇌 기증받아 자원 확보… 고령시대 난제 치매 해법 제시
인공 뇌 만들어 치료제 개발도… 전세계 뇌 공학기술 연구 활발




지난해 대구 칠곡경북대병원에서 한국뇌은행 직원이 포르말린에 담가 원형을 보존해 온 뇌 조직을 들어올려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지난해 KAIST 연구실에서 한 연구원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쥐의 뇌에 빛을 쏘면서 쥐를 조종하는 모습. 한국뇌은행· KAIST 제공

지난해 10월 미국 텍사스대 토드 로버츠 교수팀은 독특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새끼 금화조의 뇌를 조작해 노래하도록 한 거죠. 놀랍게도 연구는 성공했습니다. 부모에게 노래를 배운 적 없는 새끼 금화조가 조작대로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빛으로 뇌를 조절하다, 광(光)유전학

연구팀은 이 연구에 광유전학 기술을 사용했어요. 광유전학 기술은 빛으로 특정 신경세포를 조절하는 방법을 말해요. 연구팀은 먼저 빛에 반응하는 단백질 ‘채널로돕신’을 바이러스에 넣고, 그 바이러스를 뇌에 주입했어요. 뇌 신경세포 속 채널로돕신 단백질에 빛을 쏘자 전기 신호를 일으키며 반응하게 됐죠.

연구팀은 노래를 듣고 학습하는 뇌신경 회로를 조작했습니다. 고도의 음 통제 영역(HVc)과 여기 연결된 입력신경(Nif)에 채널로돕신을 넣고 빛을 쏜 거죠. 그 결과 새끼 금화조는 배우지 않은 노래의 음절을 스스로 습득했습니다. 빛을 비추는 시간이 길수록 노래도 길게 불렀습니다. 로버츠 교수는 “이번 연구는 앞으로 사람의 뇌에서 언어 발달에 관한 연구를 할 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지난해 8월에는 KAIST 정재웅 교수와 미국 워싱턴대 마이클 브루카스 교수 공동연구팀이 광유전학 기술과 약물을 사용해 새로운 연구에 성공했습니다. 쥐의 뇌를 조종해 특정 장소를 좋아하게 한 겁니다.

연구팀은 먼저 쥐의 뇌에서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보상회로에 채널로돕신 단백질을 넣었어요. 이와 별도로 쥐의 뇌에 빛을 쏘는 무선장치도 연결했죠. 그리고 쥐가 정해진 장소로 이동하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무선으로 쥐의 뇌에 빛을 쐈어요. 그럼 빛과 반응한 채널로돕신 단백질이 뇌 보상회로의 신경세포를 활성화해 ‘도파민’을 만들었습니다. 도파민은 보상회로의 신경세포에서 나오는 신경전달물질입니다. 사랑에 빠졌을 때 분비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어요.

쥐는 도파민이 나올 때 있던 장소에 점점 더 오랜 시간 머물기 시작했습니다. 빛을 이용해 쥐가 특정 장소를 좋아하게 만든 것이죠. 반대로 연구팀이 도파민 억제 약물을 뇌에 주입하자 도파민이 분비되는 뇌신경 회로가 제어됐고, 쥐는 특정 장소를 선호하지 않게 됐답니다.

뇌, 이젠 직접 만든다

우리 주변에는 우연한 계기로 만들어진 발명품이 꽤 있습니다. 두통약을 만들다 발명된 콜라, 푸른곰팡이에서 찾아낸 항생제 페니실린이 대표적이죠. 2013년 오스트리아과학아카데미 매들린 랭커스터 박사도 줄기세포로 신경세포를 만들던 도중 우연히 ‘뇌 오가노이드(미니 인공장기)’를 만들었어요. 뇌 오가노이드는 다양한 신체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줄기세포를 적절한 환경에서 길러 만든 ‘인공 뇌’예요.

랭커스터 박사는 실험 중 배양접시에 하얀 좁쌀만 한 물체가 떠 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바로 뇌 조직이었죠. 실제 뇌는 한 뼘 크기지만, 랭커스터 박사가 발견한 뇌 오가노이드는 약 2mm였습니다. 임신 9주 차 태아의 뇌만큼 작았습니다.

뇌 오가노이드는 뇌 발생 과정을 파악하고 뇌 질환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약물 개발에 활용하기 위해선 뇌 오가노이드를 좀 더 성인 뇌와 비슷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해요. 미국 하버드대 김두연 교수는 “현 기술의 뇌 오가노이드는 초기 단계의 뇌여서 치료제가 필요한 환자의 뇌 조직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기술 개발이 더 이뤄지면 약물을 환자의 인공 뇌에 직접 투여해 효과를 입증하는 ‘환자 맞춤 치료제’ 개발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죠.

지난해 8월 미국 캘리포니아대 앨리슨 무오트리 연구팀은 실험실에서 만든 뇌 오가노이드에서 실제 뇌와 같은 뇌파 신호가 나왔다고 발표했어요. 이는 뇌 오가노이드가 인간의 실제 뇌와 유사한 신경망을 갖췄다는 뜻입니다.

연구팀은 10개월간 수백 개의 뇌 오가노이드에 전극을 부착해 전기 활동을 하는지 관찰했어요. 그 결과 뇌 오가노이드에서 전기 신호가 포착된 겁니다.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보니 전기 신호의 패턴이 6∼9개월 만에 태어난 미숙아의 뇌파와 비슷했습니다. 과학자들은 뇌 오가노이드가 아직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뇌도 은행이 있다?

인간의 뇌는 약 1000억 개의 신경세포로 구성돼 있습니다. 뇌세포 간 접합 부위인 ‘시냅스’ 약 1000조 개는 이 신경세포들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복잡하고 엄청난 규모의 뇌를 우주에 빗대 ‘소우주’라고 부르기도 하죠. 뇌 연구를 위해 뇌 자원이 필요하지만 사람의 뇌를 실제로 구하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쥐나 새, 선충 등 동물을 이용해 뇌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다른 동물의 뇌와 아주 달라요. 예를 들어 고차원적 사고를 가능케 하는 뇌의 전두엽 부위는 코끼리의 경우 전체 뇌의 10% 정도이고, 파충류는 아예 없습니다. 반면 인간은 전두엽이 뇌의 3분의 1을 구성하고 있어요. 인간의 뇌는 성별과 나이에 따라 다르기도 합니다. 따라서 다양한 인간의 뇌 자원을 확보하는 건 뇌 연구에 큰 도움이 됩니다.

한국뇌은행은 뇌 연구 자원을 연구자에게 제공합니다. 2014년 인구 고령화 등 사회적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뇌연구원 산하에 설립됐죠. 외국에서는 30년 전부터 뇌은행을 만들었습니다. 세계 최대 뇌은행이 있는 브라질은 뇌 기증률이 90%에 달합니다. 뇌 연구가 활발한 덕에 알츠하이머병이 ‘뇌간’의 변화와도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밝혀내기도 했습니다.

김종재 한국뇌은행장은 “광유전학 같은 뇌 공학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선 먼저 인간 뇌의 생리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며 “뇌 연구는 앞으로 AI 등 여러 분야에서 파급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혜란 어린이과학동아 기자 r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