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4일 중국 청두에서 정상회담을 갖는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두 정상은 양국 간의 현안을 대화를 통해 해결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
팬데믹(대유행)에 직면해 세계 각국은 자국중심주의로 크게 기울었다. 이탈리아가 심각한 사태에 빠져 의료용 마스크 지원을 요청했을 때 독일과 프랑스는 의료 관련 제품 수출 규제와 재고 관리에 들어갔다. 유럽연합(EU)은 지역연합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었다. 당초 낙관적 발언을 반복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8만 명이 넘는 희생자를 앞에 두고 최근 중국 비난에 전념하고 있다.
동아시아는 미국과 유럽만큼 심각하지 않다. 중국 우한에서 확산을 막는 데 실패한 후 중국은 강제적으로 사태를 수습했다. 한국은 대구에서 혼란을 신속히 수습하고 국회의원 선거를 실시하는 등 모범적인 성공 사례가 됐다. 일본의 경우 유전자증폭(PCR) 검사가 충분하지 않은 등 문제로 고전하고 있지만 그래도 희생자 수는 낮은 수준으로 억제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 내 감염증 확대 방지 및 극복을 향해 양국이 계속 협력하자’는 강 장관의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인도적인 협력을 의료협력으로 확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일의 경우 협력하는 측에도, 받는 측에도 높은 장벽이 있다.
예를 들어 한일 통화스와프는 양측이 바라는 금융협력이다. 한 측의 통화체제 안정은 다른 측의 경제에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측이 “돈을 빌려주는 측이 머리를 숙인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다”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한국 측이 자존심을 버리고 협력을 요청할 수 없을 것이다.
2013년 남수단의 실패 사례도 있다. 유엔평화유지활동(PKO)에 참가하는 일본 자위대가 긴급사태에 직면한 현지 한국군 사령관의 요청에 응해 총탄 1만 발을 제공했다. 하지만 그 선의는 참담한 결과로 끝났다. 일부 한국 야당과 미디어는 마치 ‘음모’가 있는 듯 비난했다. 협력하는 측도 비난에 동요하지 않는 ‘고품격 정신’이 필요하다.
초기 대응에 혼란이 있어서 현재 일본에서는 PCR 검사 수가 한국의 6분의 1에 그치고, 검사 키트뿐만 아니라 의료용 마스크와 방호복까지 크게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한국에 의료협력을 요청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일본 스스로의 실패가 부각돼 한국에 이용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일본 국민들도 그렇게 보고 있다.
코로나19 대응에 성공해 총선에서 대승한 문재인 정권이 경제위기 타개를 명분으로 내걸고 한일 관계의 최대 장애를 제거하면 어떨까. 징용 문제, 그중에서도 일본 기업의 압류 자산 현금화 문제를 한국이 스스로 해결하면 새로운 연대 시나리오가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일본도 융통성 있게 대응해 한일 통화스와프 재개부터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완화까지 나아갈 수 있다.
물론 한국의 진보정권에 있어 징용 문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라크 파병 결정과 비교할 만큼 고통스러운 결단일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12월에 중국 청두에서 아베 신조 총리와 회담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은 “중요한 것은 해법을 찾는 것” “본질을 둘러싸고 논쟁을 하는 것은 문제를 더 어렵게 한다”고 말했다. 그때의 사려 깊은 리더십에 기대를 건다.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