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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흑사병’ 코로나, 4차산업 ‘뉴 르네상스’ 개막 방아쇠 될 것[논설위원 파워 인터뷰]

입력 | 2020-05-13 03:00:00

안종배 국제미래학회장




국내외 미래학자와 전문가 500여 명이 참여한 국제미래학회 제3대 회장인 안종배 한세대 교수. 2015년에 출간한 ‘대한민국 미래보고서’에서 인공지능과 스마트산업 등 4차 산업혁명 기술과 휴머니즘의 융합을 예고한 바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안영배 논설위원

원격 온라인 수업, 재택근무, 화상회의…. 낯선 문화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비대면 방식의 언택트(Untact) 시대가 열린 것이다. 코로나19가 반강제로 몰고 온 변화의 물결이다. 미래학자들은 세상은 이제 코로나 전(BC·Before Corona)과 후(AC·After Corona)로 규정될 것이며, 인류에게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고 강조한다. 최근 최고경영자(CEO) 대상 원격 화상 특강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펼쳐질 세상을 ‘뉴(New) 르네상스’로 규정한 미래학자 안종배 한세대 교수(58)를 만났다. 국제미래학회 제3대 회장이자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혁신위원을 맡고 있는 안 교수는 지구촌은 당분간의 혼란기를 거친 후 휴머니즘과 4차 산업혁명 기술이 결합한 신세계, 즉 문명적 대변혁의 시대를 맞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염병과 문명의 변혁
 
―서유럽에서 수백 년 전에 유행했던 르네상스 운동을 담론처럼 들고나왔다.

“유럽 르네상스 시대의 개막은 흑사병으로 불리는 페스트가 창궐한 게 결정적 원인이 됐다. 흑사병으로 인해 14세기 중반 당시 유럽 총인구의 30%가 목숨을 잃었고 유럽의 전통 사회 구조가 붕괴됐다. 페스트 대응에 무력했던 교회는 그동안 누려온 절대 권력을 내려놓아야 했고, 봉건영주 체제의 경제가 도시자본제로 바뀌고, 창의와 인간성이 중시되는 문화가 이때 형성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역시 기존의 사회 시스템과 문화를 변화시키는 촉매제가 됐다. 21세기 첨단 과학기술 시대에 미미한 바이러스 하나가 전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고 세계 경제마저 일제히 멈추게 하는 현실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이는 그간 절대 권력처럼 믿어왔던 과학기술 만능주의에 대한 회의(懷疑)를 가져왔다. 또한 우리는 반강제적으로 사회적 격리를 겪으면서 지금까지의 삶에 대해 성찰의 시간을 가지게 됐다. ‘멈출 줄 모르는 발전’을 목표로 삼은 속도 우선주의와 물질주의적 가치관에서 한 발짝 물러나 조금 느리더라도 인간의 삶의 목적과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됐다. 코로나19가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붉은여왕의 덫’(경쟁을 통한 끝없는 변화와 낙오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한 셈이다.”

―코로나19라는 돌발성 악재에 대해 과도하게 사회적 변화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나.

“변화의 씨앗은 진작 뿌려져 있었다. 코로나19의 주요 현상인 언택트 문화는 40년 전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에서 재택근무와 전자정보화 가정의 등장으로 이미 예고됐다.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온라인 화상 회의 및 온라인 쇼핑, 비접촉 배달앱 등이 빠르게 성장해 오고 있었다. 그러다 이번 사태로 언택트 문화가 전면적으로 부상한 것이다. 그 위력은 수천 년간 이어져온 대면 접촉 방식의 종교집회마저 화상 설교로 바꾸어 버릴 만큼 강력했다.”

국제미래학회가 2015년 발간한 ‘대한민국 미래보고서’는 창의와 인성을 중시하는 휴머니즘의 등장을 이미 예측한 바 있다. 인류의 문명사는 과학기술 위주의 발전을 넘어 영성(靈性)적 휴머니즘이 부각되는 방향으로 어느 순간 급속한 변혁이 찾아온다는 내용이다. 다만 그 급격한 변화를 이끌 방아쇠가 코로나바이러스일 줄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휴먼기술문명 시대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과거의 성곽시대(walled city)가 다시 도래할 수 있다”며 생산공장 등 글로벌 공급망이 본국으로 귀향하는 등 자유의 시대가 저물 것이라고 경고했다. 애덤 포즌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장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취약해진 세계 경제에 ‘경제 민족주의’라는 또 다른 전염병이 퍼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코로나19가 안정화될 때까지 우리는 당분간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고, 그 이후에도 상당한 기간 국내 경기 침체와 글로벌 경제 불황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세계무역기구(WTO)로 상징되는 글로벌 3.0, 즉 무역의 세계화는 약화되는 반면 4차 산업혁명과 휴머니즘의 강화로 새로운 산업과 비즈니스 마당이 펼쳐질 것이다. 한국은 이런 위기와 기회의 상황을 동시에 맞이하고 있다. 최근 방탄소년단(BTS)이 유료 비대면 화상 공연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린 것에서 보듯 새로운 글로벌 4.0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의 미래는 어떨까.

“미래 사회는 초지능, 초연결, 초실감이 구현되는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정신 및 감성 영역의 휴머니즘이 강화되는 뉴 르네상스 시대가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우리 사회는 비대면 참여로 현존감을 강화하는 언택트 프레즌스(Untact Presence), 모든 비즈니스의 블랙홀인 스마트 플랫폼(Smart Platform), 첨단 기술과 감성으로 개인 맞춤하는 인공지능 퍼스널(AI Personal)이 모든 영역에 적용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거부하거나 머뭇거리면 구한말 대한제국처럼 우리는 또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안 교수는 코로나19에 등이 떠밀려 갑자기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선 우리 사회는 예전으로 돌아가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동서고금에 걸쳐 시대적 변화를 가장 견디기 어려워하는 이들은 기존 사회 질서에서 이익을 누리는 세력이기 마련이다. 특히 학연 지연 혈연 등 대면 및 접촉 문화로 정치 경제적 이익을 향유하던 계층은 비대면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거부감을 보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역행했다가는 도태된다는 게 미래학자들의 경고다.

빅브러더 정부 경계해야

―한국이 휴머니즘과 4차 산업혁명이 결합한 신문명 질서에 경쟁력이 있나.

“뉴 르네상스 미래 사회는 인공지능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중심으로 한 4차 산업혁명 기술과 인간의 창의성 및 인성의 결합이 핵심 국가 경쟁력이 될 것이다. 한국은 코로나19 대응에서 인공지능과 ICT로 확진자들의 동선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온라인 교육과 재택근무를 무리 없이 실천하는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기술(IT) 인프라 활용 역량을 보여주었다. 또한 드라이브스루 같은 창의성을 발휘해 효과적인 방역을 펼쳤고, 사재기 없는 사회적 거리 두기 등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신뢰성도 보여주었다. 한국은 전통 유교주의에 기반한 휴머니즘에서 놀라운 강점을 갖고 있다. 서양의 테크놀로지와 동양의 휴머니즘이 결합한 ‘휴먼 테크놀로지’의 세상에서 한국은 유리한 위치에 서 있다.”

안 교수의 미래 예측은 그동안 동서양의 ‘예언자’들이 예측한 미래와도 일맥상통한다. 미국 다큐멘터리 ‘월스트리트의 예언자’로 유명한 경제 전문가 마틴 암스트롱은 빅데이터와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세계 경제 예측 주기를 발표하면서 동양의 부흥을 예언했다. 세계는 2030년대부터 본격적인 4차 산업혁명이 펼쳐지게 되며, 2040년대 들어서는 미국과 유럽을 제치고 한국과 중국 등 차이나권에서 이를 주도하게 된다는 것.

―정치 경제적 측면에서 닥칠 변화는….


“코로나19 방역에서 보듯 정부는 민간 통제력을 강화시키려 하고 의회의 영향력은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국민들은 ‘빅브러더’가 되려고 하는 정부의 월권을 감시하고 자유와 인권을 함께 지켜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스마트 플랫폼에 기반한 스마트 거버넌스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경제에서는 스마트 뉴딜 경제 시스템으로 체제를 재편할 필요가 있다. 즉, 스마트 플랫폼과 인공지능에 기반한 스마트 교육, 스마트 워크, 스마트 헬스케어, 스마트 팩토리, 스마트 시티, 스마트 팜 산업 등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안 교수는 인구 감소 문제가 한국의 미래 성장을 괴롭힐 것이라고 우려했다. 코로나19 이후 결혼 연기와 출산 기피 등으로 인해 인구 감소가 더욱 가속화돼 결국 국가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 코로나19 이후 결혼 및 출산 장려금 대폭 확대 등 과감한 저출산 대응 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안종배 교수::

1985년 서울대를 졸업한 뒤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및 경기대 대학원을 거쳐 미국 미시간주립대 대학원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했다. 현재 국제미래학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미래창의캠퍼스 이사장, 클린콘텐츠국민운동본부 회장,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혁신위원, 국회미래정책연구회 운영위원장 등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미래학 원론’ ‘제4차 산업혁명 마스터플랜’ ‘퓨처 어젠다’ 등이 있다.
 
안영배 논설위원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