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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正義와 기억을 독점할 수 있나

입력 | 2020-05-14 03:00:00

윤미향 비례대표 낳은 정의기억연대
反日민족주의-페미니즘으로 무장해
아무도 못 막는 권력으로 군림
좌파단체 정의와 기억만 정당한가
‘피해자 중심’ 위안부 해결 필요하다




김순덕 대기자

기억은 때로 주인을 배반한다. 굳이 남을 속이거나 거짓말을 할 작정이 아니어도 기억이 잘못되는 바람에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당선자도 그런 경우이길 바란다. 일본군 위안부 존재 자체도 모르던 30년 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시절부터 윤미향은 피해자 문제 해결에 힘써 온 여성평화인권운동가였다.

영문학자이면서 뇌과학을 파고든 권택영 경희대 명예교수는 기억엔 속임수가 있다고 했다. 과거의 경험들을 저장해 둔 뇌의 장치에서 그 사건을 그대로 떠올리는 게 아니라 현재의 내가 원하는 사건으로 회상하기 때문이다.

윤미향 당선자를 배출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는 그래서 용감하다. 정대협이 2016년 설립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과 통합해 2018년 탄생한 시민단체인데 명칭에 정의수호도, 정의회복도 아닌 정의기억이 들어간다. 내 기억도 다를 수 있는 판에 심지어 연대해서 정의를 기억하라는 소리 같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도 하나의 기억만 가지고 있지 않다. 2006년 동아일보에는 “열다섯 살이던 1942년경 집에서 자다가 일본군에 의해 대만으로 끌려갔다”고 했는데 여성가족부의 ‘일본위안부 피해자 e역사관’에 채록된 1993년 증언은 다르다. 1944년 만 열여섯 살 때 취직하라는 친구 분순이 엄마 말을 듣고 분순이와 함께 일본 남자를 따라갔더니 위안소였다고 돼 있다. 정의연이 일본의 범죄 행위로 보는 ‘강제 연행’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정의연은 자기네 미션이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범죄 인정,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 진실 규명, 책임자 처벌 등을 통한 정의로운 해결’이라고 밝히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관한 한 누구도 이 단체에 이의 제기 못 할 만큼 정의연은 권력이 된 상태다. 반일(反日) 민족주의에 페미니즘으로 무장한 좌파진영에 속해 있으면서 국정 교과서처럼 정의와 기억을 독점한 형국이다. 이런 정의연의 운동 방식을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비판한 박유하 세종대 교수는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학문의 자유가 위태로워졌다.

7일 “속을 만큼 속았고 이용당할 만큼 당했다”는 이 할머니의 작심 발언은 피해자들을 볼모 삼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사실상 막아온 정의연에 대한 원폭 투하였다. 어제 진영 다툼을 그치고 한일 교류와 현 시대에 맞는 사업 방식을 촉구한 것 역시 어떤 지일파 정치인도 못 해낸 ‘큰 정치’가 아닐 수 없다. “친일세력의 부당한 공격”이라고 호소한 윤미향보다 이 할머니가 비례대표에 적격이다.

할머니가 지적한 정의연의 불투명한 회계 처리는 고치면 된다. 더 큰 문제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해 위안부를 지원한다는 이 좌파단체가 스스로 ‘국가’가 되어 개인의 의지를 허용하지 않는 민족권력으로 군림한다는 데 있다.

7일 이 할머니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때 10억 엔이 일본서 들어오는데 윤미향만 알고 있었다” “자기 사욕 차리려고 위안부 문제 해결 않고 국회의원 한다”고 지적했다. 정의연과 윤미향은 펄쩍 뛰었지만 1997년 일본이 아시아여성기금을 통한 해결에 나섰을 때도 그들은 반대한 전력이 있다.

“할매들은 다 죽어가잖아. 그런데 (정대협에서) 모금을 받지 말라, 그것 받으면 더러운 돈이다, 화냥×이다.” 2004년 이화여대 김정란의 여성학 박사 논문에 나오는 증언이다. 윤미향은 1998년 “(일본이) 죄를 인정하지 않는 동정금을 받는다면 피해자는 일본 우익들이 내뱉었듯이 ‘자원해서 나간 공창(公娼)’이 되는 것”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생존자들이 국민기금을 수령하면 위안부 운동은 파국을 맞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이 김정란 박사의 지적이다.

위안부 문제 해결은 ‘피해자 중심 접근’이어야 한다고 위안부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는 2017년 말 결론지었다. 그렇다면 이제 정의연은 물러나야 한다. 피해자들은 일본의 ‘적절한 사과’에 동의하고 경제적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느낀다는데 ‘민족적 자존심’을 내세워 막는 것도 도리가 아니다.

반일을 국정 운영의 동력으로 삼을 작정이 아니라면, 2015년 한일 합의를 사실상 파기한 문재인 대통령이 나설 필요가 있다. 정의와 기억은 누구도 독점할 수 없다. 정의연도, 정부도 마찬가지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