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주제 단편소설 낸 여성작가 3인이 본 ‘나의 할머니’
‘듣기만 해도 찡해지는 그 이름, 할머니!’ 작가들은 각자의 기억에서 빚어진 서로 다른 할머니에 관해 이야기하며 할머니의 모습 속에 담긴 우리 사회의 흔적들을 되짚었다. 왼쪽부터 백수린 윤성희 손보미 작가.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할머니란 대상이 특별히 흥미로웠던 이유는 뭘까.
▽윤성희=할머니는 10대부터 60대까지의 특징이 층층이 쌓여있어 재미있는 존재다. 늙은 것이 아니라 층과 격이 있는 것이다. 우울했다가 때론 귀엽기도 하고 여러모로 입체적이지 않나.
▽손보미=색다른 관점에서 여성에게 접근할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백수린=맞다. 여성 작가가 할머니의 관점에서 여성의 삶을 보여주는 작품을 쓴다는 건 의미가 있다. 할머니라고 하면 보통 희생을 떠올리는데 그렇지 않은 할머니를 재현해보고 싶기도 했다.
―각자의 소설 속 할머니가 정말 다른데 서로의 작품을 어떻게 읽었나.
▽윤=다들 잘 썼더라. 귀여운 할머니의 연애소설도 누군가 쓰겠지 했더니 백 작가 작품이 있었고, 고택에 홀로 남은 할머니와 그의 이상한 자부심 같은 것도 욕심나는 이야깃거리였는데 손 작가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잘 살려서 썼다. 써보고 싶지만 내가 잘 풀어내지 못했던 이야기라서 더 재밌게 읽었다.
▽손=윤 선배의 소설에 ‘나도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대목이 있다. 분위기는 다르지만 내 소설에도 비슷한 대사가 나온다. 같은 대사가 다르게 읽힐 수 있어 재밌었다. 백 작가 소설도 그의 감성이 잘 묻어나는 몽글몽글한 작품이다.
―작가들의 할머니는 어떤 분이고 소설에는 어떻게 반영됐나.
▽백=워킹맘이셨던 엄마를 대신해 할머니가 날 키우셨다. 지금이야 조손(祖孫) 육아가 흔하지만 우리 땐 드물었다. 지금 생각하면 60대라면 젊은데 할머니가 정말 나이 드신 분이라고 생각했다. 양가의 할머니는 모두 제대로 배우지 못하셨다. 소설에선 많이 배운 할머니를 상상해서 만들어냈지만, 당신의 것을 내어주고 포기했다는 점에서 결국 우리 할머니와 많이 연결된다고 느꼈다.
각자가 기억하는 할머니에 대한 수다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화투점을 봐주시고 민화투를 함께 치던 할머니, 여름방학마다 찾았던 할머니의 편안하고 따뜻한 품, 혹은 양육을 짊어지고 너무 빨리 할머니가 돼버린 분들. 작가들은 할머니를 회상하면서 “할머니를 통해 한국 사회의 단면을 압축적으로 볼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어쩌면 곁에 있지만 이름이 지워졌던 그들의 삶이 그 무엇보다 더 소설적이라고 말이다.
백 작가는 ‘유연한 할머니’, 윤 작가는 ‘너무 진지하지 않은 귀여운 할머니’, 손 작가는 ‘전력을 다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단다. 백 작가는 “작가들이 만들어낸 각양각색의 할머니를 만나면서 독자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할머니의 모습을 찾아본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