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삼성-현대차 ‘포스트 반도체’ 가동
‘포스트 반도체’로 주목받는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차세대 제품을 놓고 한일 간 주도권 싸움이 시작됐다. 일본 도요타와 파나소닉이 미래차 핵심 기술인 ‘전고체 배터리’ 연구개발(R&D)과 양산을 위해 일찌감치 동맹을 맺은 가운데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과 현대자동차그룹이 협력에 나서 경쟁 구도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후발 주자 격인 중국과 독일 기업도 대규모 투자를 통해 추격에 나선 만큼 전기차 배터리 시장 주도권을 둘러싼 주요국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14일 완성차·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전고체 배터리 분야에서 가장 기술력이 앞선 기업으로는 도요타와 파나소닉 연합이 꼽힌다. 특히 글로벌 전고체 배터리 관련 특허의 40%는 도요타를 포함한 일본 기업이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고체 배터리는 현재 전기차 등에 쓰이는 리튬이온 배터리와 비교하면 1회 충전 시 주행 가능 거리가 2배 이상 늘고 폭발 가능성이 낮아 ‘꿈의 배터리’로 불린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LG화학, SK이노베이션, 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 3사가 주도권 싸움에서 승기를 잡았지만 차세대 시장 대결은 이제 막이 오른 것이다.
2017년부터 협력을 시작해 지난달 배터리 합작사 ‘프라임 플래닛 에너지 앤드 솔루션스’를 설립한 도요타-파나소닉 연합은 이르면 2022년부터 전고체 배터리를 양산한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웠다. 후발 주자의 추격도 거세다. 중국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과 투자로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상위권 업체로 도약한 CATL은 베이징자동차 등 자국 완성차 업체와 손잡고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 나섰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도요타는 전고체 배터리의 설계부터 제조 방식까지 다양한 기초 특허를 확보했고, 파나소닉의 전기차 배터리 양산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한국 기업에 상당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 업계도 전고체 배터리 기초 R&D를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 가시적인 성과를 내진 못하고 있다. 산업계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13일 만나 전고체 배터리 기술 협력을 논의한 것을 계기로 판도가 바뀔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 최고 그룹의 총수들이 협력하기로 한 이상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어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 시점이 기존 예상 시기인 2025년보다 당겨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은 3월에 1회 충전에 800km 주행할 수 있고 1000회 이상 재충전 가능한 전고체 배터리 기술 연구 결과를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 에너지’에 게재하기도 했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전고체 배터리 개발은 영국 다이슨이 중도에 포기했을 만큼 어려운 분야로 꼽힌다. 삼성과 현대차의 협력이 이뤄지면 일본 등 경쟁국보다 한발 앞서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