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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인 감염시켜 백신개발?”… 코로나가 부른 윤리 논쟁들

입력 | 2020-05-15 03:00:00

인체 임상시험 ‘휴먼챌린지’
항체 보유자 ‘면역 여권’ 발급
동선 공개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




전 세계 다양한 인종과 계층에 확산된 코로나19는 건강 격차는 물론이고 개인의 자유와 공중보건이라는 사회적 목표 사이의 갈등 등 여러 윤리적 화두를 던지고 있다. 사진은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지하상가 ‘고투몰’이 시민들로 붐비는 모습.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지역과 계층을 가리지 않고 퍼지고 있지만, 막상 감염자와 치명률 통계를 보면 소수인종 등 사회적 소수가 취약한 것으로 나타나 그 원인을 놓고 사회적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서두르기 위해 바이러스를 주입하는 ‘휴먼챌린지’, 코로나19 항체 보유자에게만 통행을 허용하는 ‘면역 여권’도 연구윤리와 정당성 논란을 빚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태원 클럽발 유행을 막기 위해 실시한 환자 동선 공개가 개인정보보호 가치를 희생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 코로나19는 모두에게 평등한가

엘리세오 페레스스테이블 미국 국립소수자보건및보건격차연구소장팀은 11일 학술지 ‘영국의학저널(BMJ)’에 “미국 내 일부 지역에서 코로나19 환자 및 사망자 발생률을 비교해 보면 백인 및 유색인 거주자 사이에 최대 2, 3배 이상 차이가 난다”고 발표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시카고의 경우 라틴계 미국인은 인구 1만 명 중 1000명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925명이 감염됐다. 이는 백인(389명)에 비해 2배 이상 많은 수치다. 사망자 수는 차이가 더 크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1만 명 중 73명이 코로나19로 사망해 백인(22명)의 3배가 넘는다.

영국에서는 중증환자 비율에서 인종별 차이가 나타났다. 영국 레스터대 병원 연구팀 분석에 따르면 코로나19 중증환자 2249명 가운데 아시아나 아프리카계 환자의 비율이 35%가 넘었다. 영국 전체 인구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13%)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사회적 소수자가 코로나19에 취약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생물학적 원인에 의해 감염률이나 치명률에 차이가 생겼을 것으로 추정한다. 소수인종에서 천식과 심혈관 질환, 당뇨 등 기저질환자 비율이 높은 것이 코로나19에 취약한 이유라는 주장도 있다. 반면 사회경제적 차별이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페레스스테이블 소장은 “차별과 그에 따른 만성 스트레스에 의해 신체 및 면역계가 영향을 받아 기저질환이 더 많이 생겼을 수 있다”고 말했다. 캄레시 쿤티 영국 레스터대 병원 교수 역시 “소수인종은 거주지가 밀집돼 있고 위생 측면에서 취약할 가능성이 높으며, 청소 등 대체가 불가능한 일자리에서 일하는 탓에 사회적 거리 두기에서 소외됐을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 “항체는 새로운 권리?” ‘면역 여권’ 도입 논란

영국과 독일, 칠레 등이 검토 중인 면역 여권 정책도 논란이 뜨겁다. 면역 여권은 코로나19 항체를 보유한 사람만 통행을 허용하는 개념이다. 고빈드 퍼새드 미국 덴버대 법대 교수 등은 7일 미국의사협회지(JAMA)에서 “규제 목적에 비해 과도한 수단을 써서는 안 된다는 윤리 원칙인 ‘최소제약대안(LRA)’ 원칙에 따라 공중보건을 유지하면서 최소한의 자유만 침해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며 “이동 제한과 봉쇄 대신 면역 여권 제도가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퍼새드 교수는 “모두가 경제활동의 제약 등을 받을 경우 피해는 (사회경제적) 취약층에 더 가혹한 경향이 있는데 이 제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알렉산드라 펠런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4일 의학학술지 ‘랜싯’을 통해 “코로나19 감염자를 더욱 늘리는 나쁜 정책”이라며 “감염되더라도 생계를 위해 일을 쉴 수 없는 취약계층에게 불리하다”고 비판했다. 류영준 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항체를 보유한 사람을 우대해 이것이 ‘새로운 권리’가 되는 발상”이라며 “특정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과 보유하지 않은 사람을 (고용 등에서) 차별하는 경우와 유사하게 바라볼 수 있다”고 말했다.

○ 인간에게 바이러스 주입?…국내는 동선 공개가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

백신 임상 속도를 높이려고 사람에게 백신을 투약한 뒤 바이러스를 직접 감염시켜 백신 효능을 보는 휴먼챌린지 임상도 논란을 빚고 있다. 3월 말 니르 이얼 미국 럿거스대 철학과 교수팀은 학술지 ‘감염병저널’에서 휴먼챌린지 임상에 대해 “대상자를 젊고 건강한 성인으로 한정하고 자주 모니터링을 하며 최선의 치료를 한다면 위험은 감수할 만한 수준인 반면 세계의 의료 부담은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사이언스’ 등 과학 전문지는 “임상 기간 단축 효과가 의심된다”며 위험에 비해 효과가 불분명하다고 비판했다.

한국에서는 아직 불평등이나 면역 여권 등의 논의가 이뤄지지는 않고 있다. 류 교수는 “현재 국내에서는 환자 추적 시의 개인정보 보호 문제와 의료자원의 배분 문제가 주요 관심사”라고 말했다. 의료자원 문제는 집중치료시설(ICU) 등을 코로나19 환자들이 선점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윤리적 정당성 논란이다. 대구 신천지교회 집단 감염이 일어났을 때 “왜 문제가 된 집단에 의료자원을 먼저 배분하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됐다.

개인정보 보호 문제에 대해 류 교수는 “현재 국내는 공리주의 시각이 강해 다른 윤리적 관점은 제시되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공중보건 달성이라는 목적이 사회 전체에 주는 도움이 클 경우 환자의 동선 등 일부 개인정보 침해도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지나친 정보 공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