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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역사, 이렇게 끝날 줄은”[현장에서/김범석]

입력 | 2020-05-15 03:00:00


14일 도쿄 다이토구의 스이게쓰 호텔 내 일본 작가 모리 오가이의 고택 내부.

김범석 도쿄 특파원

“지진 등 자연재해에도 끄떡없이 버텨 왔는데….”

14일 오전 일본 도쿄 다이토구의 스이게쓰(水月) 호텔. 7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도쿄의 대표 노포(老鋪) 중 한 곳이다. 이 호텔 안에는 134년 전 지어진 일본 작가 모리 오가이(森鷗外)의 고택도 있어 역사적인 곳으로 여겨져 왔다.

이 호텔은 31일 폐업할 예정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3월부터 손님 예약이 급감했고 지난달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0%까지 곤두박질쳤다. 관리비와 직원 월급 등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 결국 80년의 역사를 뒤로하게 됐다.

이날 호텔이 문을 닫기 전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단골손님들이 방문했다. 이들은 호텔과 고택 곳곳을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호텔 주인인 나카무라 미사코(中村みさ子) 씨는 “80년의 역사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지만 손해를 덜 보기 위해 최대한 빨리 (폐업) 결정을 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일본 경제가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노포들도 경영 악화를 버티지 못하고 잇달아 쓰러지고 있다. 일본의 장인 문화를 상징하는 노포들의 폐업은 ‘자영업자의 도산’, 그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노포들의 폐업은 152년간 영업을 이어 온 도쿄 긴자의 유명 도시락집 ‘벤마쓰(辨松)’가 지난달 20일 문을 닫으면서 본격화됐다. 이 가게는 바로 앞에 위치한 ‘가부키 극장’을 찾는 관객들과 배우들이 단골손님이었다. 그러나 극장 영업이 중단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3월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 떨어졌다. 5대째 가게를 이끌었던 이카이 노부오(猪飼信夫) 대표는 가게를 유지하기 위해 양도자를 찾았지만 실패했다.

이들은 현재 상황을 ‘비현실적’이라고 표현했다. 도쿄 조후시에서 50년 가까이 레스토랑을 운영했던 도요시마 다다시(豊嶋正) 씨는 “매달 300만 엔(약 3450만 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하루아침에 수입이 사라져 폐업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토로했다.

일본 정부는 개인사업자에게 최대 100만 엔(약 1150만 원)을 지급하는 보상책을 발표했지만 도쿄 아사쿠사의 튀김 전문집 ‘긴센(金泉)’ 관계자는 “턱없이 부족하고 현실성 없는 보상책”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가게는 창업 117년 만인 10일 문을 닫았다.

일본 정부는 13일 그동안 의료 전문가들이 중심이 됐던 정부 자문위원회에 뒤늦게 경제 전문가 4명을 추가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민간신용조사기관인 도쿄 상공 리서치는 코로나19로 도산한 업체 수가 143곳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소규모 동네 업소들까지 합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오늘도 노포의 불은 계속 꺼지고 있다.

김범석 도쿄 특파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