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기자의 젊은 글쟁이를 만나다] 김초엽 작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10만 부 돌파
김초엽 씨는 “글쓰기는 자신의 삶을 의미있게 만든다. 다른 어느 것보다 큰 글쓰기의 매력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영기자 kimjy@donga.com
김초엽 씨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하 ‘우리가…’)이 최근 10만 부를 찍었다. 한국 SF소설이 거둔 최초의 성과다. 신인 작가가 낸 책이 출간 1년도 안돼 이뤄낸 성취이기도 하다. ‘우리가…’는 일본 하야카와 출판사와도 판권 계약을 맺었다. “일본에 진출한 한국 저작물 중 최고의 선인세일 것”이라는 게 출판사 측의 설명이다. 그만큼 일본 출판계의 호응도 뜨거웠다는 얘기다.
최근 만난 김 씨는 스마트폰에 저장된 단편을 보여줬다. “쿠키런 게임에 들어간 남자 이야기에요. 차마 책에 실을 수는 없었어요!(웃음)” 작법서를 읽은 뒤 처음으로 써본 소설이라고 했다. 포스텍에서 화학을 공부한 그가 학부 졸업을 앞뒀을 즈음이었다. 습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때이기도 했다.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글쓰기를 좋아했던 과학도인 김 씨가 SF소설가가 된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는 그러나 “소설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고 했다. 어렸을 적 이야기를 만들어봤지만, 가능성이 없는 것 같다는 주변 사람들의 평가에 일찍이 소설가의 꿈을 접은 터였다. 대학에 진학해 교지의 기사, 논픽션, 과학칼럼 같은 글을 쓰면서 과학행정가나 과학저널리스트 같은 진로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대학 졸업 직전 우연히 읽은 해외 작법서의 저자는 “소설은 재능이 아니라 공부”라고 말하고 있었다. 인물 내면을 탐독하고 문장을 다듬어야 한다는 여느 작법서와는 달랐다. 소설에서 중요한 건 내면 묘사라기보다는 플롯과 구조이며, 이 서사를 견고하게 쌓을 줄 알아야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안내였다. “가령 3막 구조로 짜인 소설이라면 1막에선 먼저 주인공을 소개하고 2차례에 걸쳐 위험이 암시되는 상황을 겪으면서 본격적인 위기에 진입한다는 것이었지요.” 많은 작가들이 문장 수업으로 반복하는 필사를 해본 건 딱 한 번, 김애란 씨의 단편 ‘달려라, 아비’가 너무 좋아서 따라 써본 게 전부다. 김 씨는 편하게 글을 쓰고 의견을 나누자는 마음으로 친구들과 습작 모임을 만들었고, ‘공부를 하듯이’ 소설들을 썼다.
김초엽 과학문학상 수상작 ‘관내분실’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출간 간담회 때 질문에 답하는 김초엽 씨. 동아시아 제공
스스로 “기억, 감정, 마음 등 비물질적이라 여겨지는 개념을 물질적인 개념으로 변환해서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장르의 장르’에서)고 소개하는 작가다. 과학소설(SF)은 “단순히 과학적인 소재가 아니라 과학적인 사고방식에 기반해 주제를 풀어나가는 소설”이라고 정의하면서도 “독자가 읽을 때는 감정이 먼저 움직여지기를 바라는 마음, 생각은 책을 덮은 다음에 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그렇게 감정을 건드리고자 하기에 김 씨의 SF소설은 기존 소설 독자들까지 끌어당긴다. 소설가 김연수 씨는 “명징하고 광대하게 이 세계를 바로 볼 줄 아는 이 시선에서만 ‘인간이란 무엇이며 인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생겨난다”고 김초엽 씨의 작품을 평했다. ‘왜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세계에 대해 갖게 되는 질문과 감정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작가의 답변과도 맞닿는 얘기다. 김 씨는 최근 발표한 ‘인지공간’(‘2020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수록)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이 작품은 외형적인 성장이 이뤄지지 못해, 인간의 공동의 지식과 기억을 저장하는 ‘인지공간’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브의 이야기다. 개별적인 다른 인지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이브의 시도는 실패하지만, 이브의 노력에 감화된 인지공간의 관리자 제나는 인지공간 밖으로 나가는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우리가 소외나 결핍으로 여겼던 것들이 실은 변화와 성장의 단초가 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사람들마다 힘든 상처가 있을 수 있는데 그분들이 제 글을 읽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초엽 씨의 글쓰기 노하우
①자신이 잘 쓸 수 있는 것을 찾으라=“글을 잘 쓰는 사람은 너무나 많습니다. 이 세계에서 서바이벌하려면 ‘나 아니면 쓸 수 없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자신만의 개성을 찾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보면 자기와 잘 맞는 것을 찾게 될 겁니다.”
②남들의 말에 너무 휘둘리지 말라=“특히 부정적인 피드백에요. 초등학생 때 ‘너는 재능이 없다’고 대놓고 말하는 주변 평가에 소설을 포기했었지만, 10년 여 뒤 작법서에서 ‘소설은 재능이 있어야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방법을 배우면 당신도 쓸 수 있다’는 내용에 용기를 얻어 소설을 쓰게 됐어요. 사실 자신이 뭘 잘 못하는지는 자신이 제일 잘 알잖아요. 좋지 않은 반응에 너무 크게 매이지 말고 단점보다는 장점에 집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김지영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