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과학/찰프 퍼니휴 지음·장호연 옮김/405쪽·2만 원·에이도스
#2. 전설적인 록 페스티벌인 1969년 ‘우드스톡 페스티벌’에 대해 미국인들에게 얘기해 보라고 하면 당시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실제 간 사람보다 많다.
이 사례들은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가장 진짜 같고 눈부시게 빛나는 것은 항상 가짜’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왜 기억은 왜곡되고 뒤틀리며, 없던 것도 있게 만들까.
기억이 재구성이라는 사실은 기억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미래를 상상하는 것을 힘겨워한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단편적인 인지 요소들을 통합한다는 점에서 기억과 상상이 공통되는 것이다.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현재를 벗어나 다른 곳에 서는, 마음으로서는 작지 않은 도전이듯 기억 또한 다른 시간에 서는 도전이다.
갓난아기들도 몇 시간 또는 며칠 전의 기억을 간직하는 것으로 실험 결과 밝혀졌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기억’을 떠올려 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만 두 살에서 세 살 사이의 일을 얘기한다. 이는 기억이 말하기 능력과 관계됨을 시사한다. 저자는 ‘언어 능력을 습득하는 것은 세상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정보를 기억의 체계에 인식될 수 있는 부호로 바꿀 수 있게 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이 밖에 책은 기억과 관련된 여러 흥미로운 주제들을 다룬다. ‘나 때는 말이야….’ 왜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스무 살 언저리의 얘기를 즐겨 할까. 왜 나이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할까. 일생을 규정하는 사건들이 대부분 20세 언저리에 일어나는 반면 나이를 먹을수록 결정적으로 삶을 바꿀 일들은 줄어든다. 이 때문에 우리는 ‘한창나이’ 때 경험을 더 빠른 속도로 부호화하게 된다.
인지과학적 통찰만을 건조하게 나열한 책은 아니다. 호르헤 보르헤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버지니아 울프, 앤디 워홀 등의 예술작품에서 얻은 사례들이 풍성한 인문학적 재미를 준다. 작품의 많은 부분을 유년기의 기억을 묘사하는 데 할애한 마르셀 프루스트는 특히 자주 등장한다. ‘작은 섬이 있는 푸른빛의 호수가 떠올랐고, 수양버들 사이로 노출된 섬의 암석이 신비하면서도 위압적으로 보였다’ 같은 저자 자신의 문장들도 프루스트의 문장처럼 섬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