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을 향하여/르코르뷔지에 지음·이관석 옮김/299쪽·2만 원·동녘
그로부터 5년 후 한 선배가 “건축을 잘 아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데 소개해주고 싶다”며 회사 근처 한 건물 식당을 알려줬다. 찾아가 보니 잊고 있던 그 건물과 그 사람들이었다. 선배에게 예전 일을 설명하고 빠져나왔다. 일로 인해 맺은 수많은 만남 중 가장 불쾌했던 만남이다.
스스로 ‘건축을 좋아한다, 관심이 많다’고 하는 사람을 이따금 만난다. 그에게 건축가 르코르뷔지에(1887∼1965)를 아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 이 책을 읽은 사람의 수는,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유명 건축물인 프랑스 롱샹 예배당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사람 수보다 적을 것이 틀림없다.
“건축은 숙련된 기술을 활용해서 볼륨을 빛 아래에 정확하고 장엄하게 모으는 작업이다. 건축가의 과업은 볼륨을 감싸는 표면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볼륨을 잠식하고 흡수해 스스로 우위를 차지하는 기생충 같은 표면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전도된 상황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슬픈 현실이다.”
건축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다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건축가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생각해 보았느냐고. 공모전을 주최한 공공기관이 제한 조건을 미리 파악하지 않은 탓으로 인해 당선 후에 통째로 다시 새로운 설계를 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경우가 여전히 발생한다. 공모전 담당자가 예나 지금이나 ‘건축가는 그렇게 대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상가가 자신만의 문법을 지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건축가는 건설에 능통해야 한다. 건설은 문법보다 어렵고 복잡한 과학이므로 건축가는 오랜 시간 거기에 매달리게 된다. 그러나 그 수준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주택의 평면, 입체, 표면의 일부는 실용적 자료에 의해, 다른 일부는 상상력과 조형적 창조에 의해 결정된다.”
재미있는 책은 아니다. 구입이나 완독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 자신의 건물을 지을 예정이거나 설계경기 진행을 맡았다면, 그저 서점을 잠시 방문해 이 책과 주변의 다른 건축 관련 책들을 대강이라도 훑어주길 부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