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發 신냉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애리조나주 하니웰 마스크 공장을 방문해 마스크 제조 과정을 살피고 있다(왼쪽). 중국 정부가 이탈리아를 지원하기 위해 파견한 의료진과 의료용품들. [트위터]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각국이 상당한 피해를 입고 있는 가운데 중국 기업들이 3~4월 수출한 의료용품별 규모다.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의 두 달간 의료용품 수출 규모는 77억 달러(약 9조4500억 원)에 달했다. 말 그대로 대박을 터뜨린 셈이다. 중국 기업들은 4월 26일 기준 74개 국가 및 지역, 6개 국제기구와 192건의 의료용품 수출 계약을 맺었다. 중국 정부는 기업들의 의료용품 수출 특수를 지원하고자 진단키트, 방호복, 인공호흡기 등 일부 의료용품의 경우 국내 판매 면허가 있어야만 외국에 수출할 수 있는 규정까지 없앴다.
중국은 전 세계에 유통되는 마스크와 장갑, 고글 등 의료용품의 40% 이상을 생산함으로써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이 때문에 코로나19가 창궐한 미국과 유럽 각국은 중국으로부터 의료용품을 대량수입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산 의료용품의 상당수가 불량으로 드러나 각국이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중국산 N95 마스크 86종 가운데 72종의 승인을 취소했다. 네덜란드 정부도 중국산 마스크가 품질 기준에 미달한다며 마스크 60만 개를 전량 리콜 조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럽 각국은 중국 이외의 국가로부터 의료용품 구입이 여의치 않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중국산 의료용품을 수입하고 있다.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 세워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지원에 감사하다는 내용의 전광판. [RFL]
중국은 그동안 의료용품을 비롯해 각종 제품을 독점적으로 생산해 ‘세계의 공장’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특히 각국 기업들은 코로나19 사태로 중국 정부가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등 전국을 봉쇄하자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GVC) 붕괴라는 악몽을 겪어야 했다. 세계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이 마스크조차 생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제조시설을 모두 중국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사용되는 마스크의 90%가 중국에서 생산된다. 미국 마스크 제조사 3M의 경우 중국에 생산기지 9곳, 기술센터 4곳, 연구개발센터 1곳을 두고 있다. 또 다른 마스크 제조사 하니웰은 중국에 공장 21개가 있다. 미국 시장조사 전문업체 ‘코어사이트리서치’에 따르면 신발 제조업체 스티브매든은 제품의 73%를, 전자제품 기업 베스트 바이는 60%를 중국에서 생산한다. 미국은 이처럼 저가 제품부터 자동차 부품과 반도체 칩 등 각종 첨단제품까지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신냉전이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는 중국에 대한 제조업 의존도를 줄이는 전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 이유는 대중(對中) 의존도가 높을수록 미국 정부가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생산동맹으로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 구축
미국 애플의 최대 하청업체인 대만 폭스콘의 직원들이 베트남 공장에서 아이폰을 조립하고 있다. [Vietnaminsider]
미국 정부가 우선 추진하는 전략은 중국에 진출한 자국 기업들을 미국 본토로 끌어오는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이다. 미국 정부는 자국으로 돌아오는 기업들에 대해 법인세 최고 세율을 35%에서 21%로 낮추는 등 각종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11월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일 “미국 제조업을 재건하겠다”며 중국 등 해외로 나간 기업들의 복귀를 촉구하고 있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중국에서 되돌아오는 기업의 각종 비용을 100% 지원하겠다”며 “더 많은 기업이 유턴할 수 있도록 일정 시한을 정해 이런 방안을 포함한 관련 정책들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나다 샌더스 노스이스트대 다모어-맥킴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번 코로나19 팬데믹를 계기로 미국 정부는 저금리 대출과 세제 혜택 등을 통해 중국에 나가 있는 기업들을 본토로 데려오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또 다른 전략은 한국, 호주, 뉴질랜드, 베트남, 인도, 멕시코, 일본 등과 이른바 ‘생산동맹(production alliance)’을 맺어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미국 정부는 호주, 인도, 일본, 뉴질랜드, 한국, 베트남과 협력해 세계경제를 전진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키스 크라크 국무부 경제담당 차관은 “미국은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 국가들과 새로운 글로벌 생산동맹을 구성하는 방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이 문제는 미국 국가 안보의 핵심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의 이런 전략은 코로나19 사태의 중국 책임론에 따른 단순한 경제보복을 넘어 미국 미래 전략과 연결돼 있다. 대중 강경파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은 “미국이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중국 중심의 글로벌 가치사슬 탈피에 실패한다면 국가 안보와 미래 세대까지 실패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정부는 미국 정부의 이런 전략에 맞서 ‘보건 실크로드’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우선 여러 국가 및 국제기구에 의료용품을 지원하고 각국 의료 전문가들과 화상회의를 70여 회 개최하는 등 코로나19 확산 저지를 돕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는 16개국에 의료팀을 직접 파견했고, 3월 초 세계보건기구(WHO)에 2000만 달러를 기부한 이후 최근 3000만 달러(약 368억6100만 원)를 추가 기부했다. 중국 정부의 의도는 무엇보다 대규모 의료용품 지원을 통해 코로나19 사태 은폐와 초동대응 실패, 확산 등에 따른 국제사회 내 중국 책임론을 무마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중국 정부는 자국이 코로나19 발원국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세탁하려는 속셈을 드러내왔다.
보건·의료 연대를 통한 미국 견제
중국 노동자들이 미국 포드 자동차를 조립하고 있다. [차이나데일리]
현재 중국 정부의 전략은 이와 함께 각국과 보건·의료 연대를 통해 미국을 견제하려는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중국은 이탈리아와 함께 감염병과 싸우고 ‘보건 실크로드’도 구축하겠다”며 “의사 등 전문가팀을 파견하고 의료물자도 힘닿는 데까지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중국은 300명의 중환자실(ICU) 의사와 간호사를 이탈리아에 파견하고 31t 분량의 의료물자까지 보냈다. 중국 정부가 의료팀을 보낸 국가를 보면 캄보디아, 라오스, 이란, 이라크, 파키스탄, 베네수엘라, 이탈리아, 세르비아 등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한 국가들이다. 중국 정부는 코로나19 사태에서 자국이 ‘최대 원조국’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까지 하고 있다.
브래들리 세이어 미국 텍사스주립대 교수는 “중국이 코로나19 위기를 ‘보건 실크로드’를 구축하는 데 이용 중”이라며 “중국이 세계 패권이라는 전략 목표를 위해 코로나19 사태를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로버트 달리 미국 키신저재단 소장은 “중국이 오히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이 시행한 ‘마셜플랜’과 유사한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는 가운데 양국은 신냉전을 벌이면서 국제질서 주도권을 잡고자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39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