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혁파엔 기업과 ‘원팀’인 공무원이 늘어야 법과 제도만 아니라 공무원의 사명감이 중요
하임숙 산업1부장
정부 인증을 통해 만든 제품을 몇 년째 생산하던 중소기업이 있다. 남들은 갖지 못한 기술 개발로 제품의 혁신도 이뤘다. 올해 들어 기계도 추가로 주문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정부 인증이 취소됐다. 명목상 이유는 이 회사가 생산한 제품에 안전의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이 회사는 속을 끓일 수밖에 없었다. 여태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갑자기 제품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라니. 더구나 이 회사의 기술은 올해 해외 안전당국의 인증까지 잇달아 받았다. 이 회사는 해당 인증을 관리하는 공무원의 심기를 거스른 일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공무원이 속한 부처가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점이 이 회사의 혁신 사례로 공공연히 알려진 적 있었던 것이다. 이 회사의 제품 생산에 문제가 생기자 여파는 연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연간 계약을 맺고 이 회사의 제품을 사간 중간 도매상들은 제품을 팔 경로를 찾을 수 없어 자금난에 몰려 있다.
이번엔 대기업 이야기다. 여러 지방자치단체의 경쟁을 뚫고 어느 지자체에 대규모 공장을 짓기로 했다. 생산될 제품이 한국의 대표 수출품 중 하나였기에 중앙정부가 나서서 입지 규제를 풀어주기까지 했다. 회사는 향후 수년간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을 투자해 공장을 여러 개 짓고, 협력업체도 수십 개 유치할 예정이다. 하지만 해당 공장을 짓는 작업은 기대만큼의 속도로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워낙 대규모 공장이다 보니 용수를 빼내는 문제 등에 걸리는 지자체가 서너 개나 되기 때문이다. 이 회사가 보기에 회사와 계약한 지자체를 제외한 나머지 지자체는 굳이 빨리빨리 승인 해줄 이유가 별로 없다. 이럴 때 공무원들이 잘하는 일은 일을 진행시키는 것도 아니고 안 시키는 것도 아닌 상태로 내버려두는 것이다. “중앙 부처의 벽을 넘어서고 나니 지자체라는 더 높고 단단한 벽이 기다리고 있네요.”
물론 적극적, 창의적으로 일했다가 나중에 처벌받은 공무원들의 사례가 있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앞으로 글로벌 산업의 전장에서 국가와 기업이 함께 뛰는 ‘2인3각 경기’ 분위기가 더 강해진다는 점에서 한국의 공무원 한 명, 한 명이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산업부 1차관을 지낸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은 1970년대 후반 한국의 전자 기업들이 미국에 컬러TV를 수출하기 시작하자 미국 정부에 불려가 “우리 전략 상품이니 당분간 수출하지 말라”며 ‘혼난’ 이야기를 들려줬다. “당시엔 약소국의 설움을 느꼈지만 나중엔 국가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적어도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들은 오랫동안 그렇게 움직여 왔다.” 하물며 우리처럼 수출에 의존하는 작은 나라야 말해 뭣 하나.
하임숙 산업1부장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