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5·18’이란…]<4·끝> 소설가 정찬주
정찬주 작가가 쓴 ‘광주 아리랑’의 주인공은 1980년 5월 고달프게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들이다. 정 작가는 “소설은 항쟁에 나섰던 이들의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라는 피맺힌 울분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출판사 다연 제공
정 작가는 최근 두 권짜리 소설 ‘광주 아리랑’을 펴냈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에 바치는 헌정 소설이다. 5·18의 ‘전야’라 할 수 있는 14일부터 공수부대의 도청 함락으로 상황이 일단락된 27일 아침까지를 70개 장으로 나눠 옴니버스 형식으로 담아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실존 인물이다. 화순에서 손님에게 광주 소식을 듣고서 구두 닦는 일을 접고 넘어온 박래풍, 공장에서 망치를 직접 만들어 나온 용접공 김여수, 견딜 수 없어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온 가구 노동자 김종철, 회사 일로 광주에 출장을 왔다가 공수부대원의 횡포를 보고 분개한 회사원 김준봉….
전남대 5·18연구소가 2003년 출간한 ‘5·18항쟁 증언자료집’이 소설의 기둥이었다. 계엄군의 폭압에 맞서 광주를 지켰던 평범한 시민들의 증언을 채록한 자료집을 통해 시민군으로 참여한 이들의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면모를 충실히 부각시킬 수 있었다.
시민군 내부의 무질서와 혼란, 민중 출신 시민군과 대학생들 사이의 긴장과 불화, 공수부대를 상대로 한 항복에 가까운 협상과 죽음을 각오한 저항을 놓고 맞서는 시민 지도부 내의 갈등을 있는 그대로 그려 다큐소설에 대한 신뢰를 높였다.
정 작가는 왜 ‘광주 5·18’을 소설로 써야겠다고 생각했을까.
“5·18 당시 시민수습대책위원회 홍보부장을 했던 고 박효선이 죽마고우예요. 계엄군이 5월 27일 새벽 무자비하게 도청을 진압하자 친구는 광주에서 10여 일 피신해 있다가 서울로 탈출했어요. 그때 상명대사대부속여고 교사였던 나를 찾아왔고 수유리에 있던 내 자취방에서 10여 일을 피신해 있었습니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날마다 밤을 새우다시피 하면서 친구에게 참혹한 광주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언젠가는 5·18 광주 역사를 소설로 쓰겠다는 생각을 그때 했습니다.”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정 작가는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교단에 잠시 섰다가 십수 년간 샘터사 편집자로 일하면서 법정 스님 책들을 펴냈다. 이런 인연으로 스님의 각별한 재가(在家) 제자가 됐다. 20년 전 서울에서 낙향해 전남 화순군 계당산 자락에 ‘이불재(耳佛齋)’를 짓고 자연을 벗 삼아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장편소설 ‘산은 산 물은 물’ ‘소설 무소유’ ‘암자로 가는 길’ 등 우리 정신문화의 뿌리를 일깨우는 책 수십 권을 펴내 행원문학상, 동국문학상, 화쟁문화대상, 류주현문학상을 수상했다.
정 작가는 “이제야 5·18이란 글 감옥에서 해방된 느낌”이라며 “‘광주 아리랑’을 영문 번역본으로 발간해 광주가 얼마나 위대한 도시였는지를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