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정권과는 전혀 다른 개헌 환경인데 슈퍼여당이라면서 연막이나 피우고 있나
이승헌 정치부장
4·15총선을 코앞에 둔 4월 초 어느 날 저녁, 서울 시내. 어렵게 시간을 낸 친문 핵심 인사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과반은 모르겠지만 1당은 할 것 같다”며 “우리가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에 이어 4·15총선까지 이기는 그랜드 슬램을 한다는 건 참 무서운 이야기”라고도 했다. 부자 몸조심인지 뭔지 진짜 속내는 알 수 없었지만 그때는 1당만 해도 좋겠다는 눈치였다. 당연히 그 당시로는 개헌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그리고 4·15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과 합쳐 180석을 얻고 “개헌만 빼고 다 할 수 있다”는 말이 나왔을 때 “언젠간 개헌도 하겠구나”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다른 입법이야 저절로 되는 것이고 다른 진보 의석에 보수에서 몇 석 더 가져오면 개헌 선인 200석이다. 이 절호의 기회를 그냥 보낸다는 건 현 집권세력을 모르거나 나이브한 것이었다.
필자는 문 대통령과 여권은 슈퍼 여당을 보유한 것 외에도 이전 정권과는 개헌을 위한 정치적 환경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개헌론이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라고 본다. 가장 큰 차이는 이전 개헌론은 현실의 어려움을 피하거나 시선을 돌리려는 정략적 목적에서 나온 것이지만 지금은 대통령 지지율도 60∼70%대가 나오니 그럴 이유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내각제 개헌’을 매개로 ‘3당 합당’과 ‘DJP 연합’을 이뤄 집권했으나 둘 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만료를 1년 앞둔 2007년 1월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원 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 야당에 대연정 제안을 고민했을 만큼 지지율이 바닥이었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한마디로 걷어찼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9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개헌을 언급했고 이재오 특임장관을 통해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를 띄웠지만 원래부터 개헌에 큰 관심이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10월 2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임기 내 개헌’을 제안했지만 최순실 게이트를 넘기 위한 카드여서 채 하루도 가지 못했다.
문 대통령과 여당이 권력구조 개편이든, 경제 조항 개정이든 개헌을 추진하려면 지금보단 좀 더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문 대통령이 2018년 국회에 개헌안을 냈을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총선 후 지금까지 여권에서 개헌론이 나온 과정을 보면 과거의 음습함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송영길 의원이 개헌을 언급하자 이해찬 대표 등이 불을 끄고, 다시 이인영 전 원내대표가 국민발안제를 띄워 화제가 되니 “개헌하자는 게 아니다”며 진화한다. 스위치를 켰다가 끄는, 전형적인 여론 조성 전술. 그러고는 문 대통령이 잇달아 개헌을 언급하고 나섰다. 문 대통령의 개헌론 추진 보도에 대해 청와대에서 별 반론이나 해명이 없는 건 그게 사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개헌 논의가 잘 안된 건 진정성이 없어서였다. 선거법을 4+1로 꼼수 처리하듯 하지 말고 “코로나 극복도 중요하지만 지금 아니면 개헌 못 한다”며 정면으로 국민들의 심판을 구하는 게 옳다. 초유의 슈퍼 여당이라면 개헌을 대하는 자세도 이전과는 달라야 하지 않나 싶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