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자유당 후보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 측에서 광범위하게 배포했다는 의혹을 받은 일명 ‘03시계’. 동아일보DB
황형준 정치부 기자
#2. 비슷한 시기에 3선에 성공한 민주당 C 의원을 만났다. 그는 “이번 같은 선거면 1년에 1번 치러도 될 정도로 편한 선거였다. 합법적인 금권·관권선거였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선거운동에 제한이 되어 있어서 사실상 출퇴근 인사 정도만 하고 유튜브 등을 활용해 편하게 선거운동을 했다. 그리고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하면서 지역 민심은 어느 정도 정리가 돼 있었다. 그걸로 선거는 끝이었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 속에서 ‘국난 극복’을 외친 민주당이 압승을 거뒀다. 여당의 승리는 예상됐지만 여당이 180석을 얻고 야당이 완패할 것이라고는 전문가들도 쉽사리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코로나19 대응에서 세계적으로 모범이 된 ‘K방역’의 효과와 미래통합당의 막말 논란 등으로 인해 민주당이 반사 이익을 얻은 것이라고만 해석하기에는 뒷맛이 개운치 않다.
이번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두고 정치권 일각에선 1992년 대선을 앞두고 논란이 됐던 ‘03(김영삼 전 대통령·YS)시계’ 등이 연상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당시 집권 여당인 민주자유당의 YS와 민주당의 김대중 전 대통령, 국민당 대표를 맡은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 등이 맞붙으면서 선거는 과열 양상을 빚었다. YS의 좌우명인 ‘대도무문(大道無門)’이 적힌 시계 400여만 개가 제작돼 다량 유포됐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대선이 YS 승리로 끝난 뒤 검찰은 무혐의 처리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긴급재난지원금과 ‘03시계’는 국민들이 낸 세금인지 아닌지, 누구 주머니에서 돈이 나왔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며 “세금을 깎아주겠다거나 하는 공약은 있었지만 최근 이렇게까지 선거 전후로 현금성 지원을 한 것은 못 봤다”고 말했다.
여당이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관철시키고 ‘관권선거’라는 야당의 공세를 무력화시킨 것도 실력이라면 실력이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긴급재난지원금에 대해 “재난대책이지 복지대책이 아니다”라며 명분을 세웠다. 그 덕분에 사회 지도층이나 중산층도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만 돈을 주자”거나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나라 곳간 걱정을 하며 반대할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이번 선거에 대한 학습효과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한번 돈맛을 본 유권자나 선거에서 재미를 본 정치인, 특히 집권 여당에서는 언제든 달콤한 유혹에 빠질 수 있다. ‘K유권자’들이 현금 살포를 보고 투표를 했다는 오해는 받지 말게 해야 한다.
황형준 정치부 기자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