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울고 짜증내는 아이에게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아이가 이유 없이(부모 생각에) 짜증을 낸다. 부모가 묻는다. “왜 짜증을 내? 왜 짜증을 내고 그래!” 아이가 운다. 부모가 생각하기에 말도 안 되는 이유다. 부모는 말한다. “뚝! 왜 울어?” 아이가 화를 낸다. 부모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부모는 말한다. “왜 왜 왜 화를 내는데?”
부모가 아이에게 ‘왜?’를 묻는 이런 상황들은 감정과 관련이 깊다. 짜증도 우는 것도 화를 내는 것도 모두 감정이다. 그런데 부모는 이유를 묻는다. 이유는 인지다.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이유를 묻는 것은 난센스다. 그 감정이 들어서 표현하는 것인데, 왜 그 감정이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그 상황이 슬퍼서 눈물이 나는데, 다른 사람이 “왜 슬프냐”고 따지는 것과 같다. 감정은 아주 고유한 영역이다. 화를 내는 사람에게 “왜 화를 내는데?”라고 물으면, 대부분 “지금 화를 안 내게 생겼어?” 이렇게 나오게 된다. 마음이 그렇다는 데 이유를 물은들 화내기를 갑자기 멈추고 논리적으로 “아, 내가 왜 화를 내는가 하면…”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짜증이나 화를 내는 것이 잘하는 행동이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단 그런 감정이 들고, 그런 마음인 것에 ‘왜?’라고 묻는다고 갑자기 멈출 수도 없고,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좀 솔직해지자. 우는 아이에게 왜 우냐고 물을 때, 정말 이유가 궁금한가. “왜 울고 난리야. 그만 좀 울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사실은 “별것 아닌 걸로 왜 이렇게 울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해. 울어도 들어줄 수 없어”를 짧게 ‘왜 울어’로 강력하게 표현한 것이다. 게다가 부모들은 대개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도 아니다. 부모도 아이가 우는 상황이 짜증스럽고 화가 나서 “네가 이렇게 저렇게 하니까 내가 마음이 이렇고 저렇고 해서 견디기가 힘들다”라고 말해야 하는 것을, 좀 심한 표현인지도 모르겠으나 기분 나쁠 때 거칠게 “아이 씨” 하고 욕부터 내뱉는 사람들처럼 그 말을 쓰는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부모가 왜 우냐고 다그칠 때 아이의 기분도 누군가에게 욕을 들었을 때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는 이유가 정말 궁금할 때는, 아이가 우는 것을 멈추었을 때 진심으로 물어야 한다. 화나거나 짜증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 감정이 멈추고 잔잔해졌을 때 물어야 한다. 물을 때는 “이건 엄마가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를 붙여주는 것이 좋다. 아이들이 좀 더 집중한다. 나랑 재미있게 놀아주고, 말도 잘 들어주는 부모가 진짜 궁금하다고 하니까 ‘엄마 아빠는 뭐가 궁금할까?’ 하는 생각에 조용해진다. 이렇게 물으면 아이에게 나름대로 솔직한 답변을 들을 수 있다.
울 때는 좀 울게 내버려두어야 한다. 우리는 왜 상대방의 감정표현에, 내가 어쩔 줄 모르고 못 견뎌 하는 것일까. 상대방의 감정을 내 것처럼 떠안기 때문이다. 상대의 감정은 상대의 것이다. 감정이 때로 약간 잘못되었다고 해도 그 사람 것이다. 그 감정이 나를 지나치게 향한다고 생각할 것은 없다. 물론 나를 향해서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에 그렇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의 본질은 그 사람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그것이 너무 나를 향한다고 생각하면 그 감정의 옳고 그름과 선후, 누가 잘했는지 못했는지 따지게 되고 싸움이 된다. 또는 그 감정을 빨리 처리해 버리고 싶어서, 무조건 종결시키려 들게 된다. 화낼 만한 일이 아닌데 화를 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래도 그 화는 그 사람 것이다. 그것이 나를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그 감정을 내가 다 떠안으려고 들지 않도록 노력했으면 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