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운전, 멈추고 늦추자] <2> 어린이보호구역 살펴보니
15일 서울 금천구 시흥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을 알리는 표지판이 달려 있는데도 도로 한쪽엔 불법으로 주정차한 차량들이 줄지어 섰다. 우산을 쓰고 길을 가던 한 행인은 정면에서 오는 트럭을 피해 급히 차량들 사이로 몸을 피하기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아직 본격적인 등교가 시작되지 않았지만, 어린이들이 지나다니기엔 위험천만한 구조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여느 초등학교처럼 이 초교 주위로 ‘스쿨존’이 표시돼 있다. 시속 30km 이상 속도를 내면 안 되고, 주정차도 함부로 할 수 없단 뜻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왕복 2차로쯤 되는 너비의 길이 주차된 차들로 가득 차 있었다. 도로 곳곳의 스쿨존 표시가 무색할 정도였다.
이렇다 보니 주차 차량 사이에서 사람이 튀어나오면 대처하기가 쉽질 않았다. 실제로 한 승용차는 서행 중이었지만, 갑자기 아이와 엄마가 모습을 드러내자 ‘끼익’ 하고 급정거했다. 동행한 이성렬 삼성교통안전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학교 현장의 상황은 저마다 달라서 각 학교 상황에 따라 ‘맞춤 처방’이 필요하다”고 했다.
○ 스쿨존 상황에 맞는 환경 조성해야
특히 보도와 차도를 나누는 ‘보차 분리’가 되지 않으면, 이동 차량에 대한 경계 없이 갑자기 뛰어드는 어린이들이 위험에 빠지기 쉽다. 이 연구원은 “도로 주변에 보도를 설치하고 가능하면 안전 펜스도 설치하는 게 스쿨존의 정석”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도로 폭이 좁은 시흥초 정문 인근엔 다세대주택의 주차 차량이 많아 별도 보도를 설치할 공간이 협소했다. 다행히 학교 후문엔 보도가 설치됐고, 정문은 등하교 시간 학교보안관이 교통안전지도를 하고 있다.
보도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시흥초 주변 도로는 구불구불하고 경사가 심해 보행자 안전을 지키기 어려운 구조였다. 직접 200m 정도 걸어서 학교까지 가보니, 주차차량은 물론 지하주차장 입구를 여러 곳 지나야 했다. 아침 출근길에 오른 차량과 등교하는 학생들 동선이 겹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차량을 타고 학교 인근을 돌아보니 정문에서 불과 50m 떨어진 커브 길에서부터 시야 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서울 서대문구 홍연초등학교 인근도 비슷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홍연초 앞에는 주택가를 가로지르는 약 200m의 일방통행로가 있다. 그런데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을 만큼 폭이 좁다. 별도의 보도도 없어 등교하는 아이들은 도로 가운데를 어떤 보호 장치도 없이 그냥 지나가야 한다.
자녀를 차에 태워 등교시키는 부모들도 이 도로를 많이 이용한다. 한 학부모는 “실은 학교로 연결되는 왕복 2차로 도로가 따로 있다. 하지만 이 통행로가 훨씬 빨리 도착해 이쪽으로 차들이 많이 몰려 위험하다. 가끔 역주행하는 차량도 있다”고 했다.
○ 통학 환경 복합적으로 고민해야
그 대신 면일초는 학교 뒤편 도로가 안전에 취약했다.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도로 가장자리에서 노상주차장이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와 한쪽 면이 맞닿아 있는 체육문화센터에 딸린 주차장이었다.
현행법은 학교와 유치원, 어린이집 주 출입구와 연결된 도로의 노상주차장만 불법으로 규정한다. 면일초 뒤편 도로의 노상주차장은 엄밀히 말하면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합법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노상주차장은 아이들의 안전을 저해한다. 인근에 있는 한 가게 주인도 “원래 이쪽으로 아이들이 많이 등교하는데, 주차장을 이용하는 차들도 많이 다녀 위험해 보인다”고 했다.
최근 정부 정책은 스쿨존 내에는 노상주차장을 만들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달 27일 “스쿨존에 부적합하다고 판단되는 노상주차장 48개소를 상반기에 완전히 폐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횡단보도에 유도등 설치하니 사고 2년간 단 1건뿐 ▼
지자체마다 교통안전대책 고심
해 지면 불 켜져 명확히 구분… 경찰도 규정 바꿔 LED등 허용
車 정지선 위반때 경고 장치도
해 지면 불 켜져 명확히 구분… 경찰도 규정 바꿔 LED등 허용
車 정지선 위반때 경고 장치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앞 도로에 설치한 ‘활주로형 횡단보도’. 서초구 제공
서울 서초구는 2018년 4월 서초초등학교 주변 스쿨존의 횡단보도 3곳에 발광다이오드(LED) 유도등을 설치했다. 이른바 ‘활주로형 횡단보도’라 부르는데, 도로 횡단보도 경계에 LED 유도등을 다는 것이다. 일출과 일몰에 맞춰 자동으로 불이 켜졌다가 꺼져 야간 운전자도 쉽게 횡단보도를 알아볼 수 있다. 서초구 관계자는 “안개나 비 등으로 인해 가시거리가 짧을 때도 효과적”이라고 했다.
주민 반응이 좋아 서초구는 이런 횡단보도를 지난해 말까지 96곳으로 확대 설치했다. 스쿨존은 물론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도 만들었다. 서초구는 “활주로형 횡단보도를 설치한 뒤 올 3월까지 설치 지역을 통틀어 1건의 교통사고만 일어났을 만큼 사고 예방에도 탁월하다”고 했다.
서울 성동구는 스쿨존 등 횡단보도 14곳에 ‘스마트 횡단보도’를 운영하고 있다. 차량이 정지선을 위반하면 근처에 있는 전광판에 위반 차량의 번호가 표시돼 경고한다.
스마트폰을 보느라 시선이 아래로 향한 보행자를 위한 ‘바닥형 보행신호등’과 보행자가 차로 가까이에 서 있을 때 나오는 안내방송 등도 스마트 횡단보도가 지닌 특징이다. 성동구 관계자는 “성동구청과 무학여고 앞에 시범 설치했더니 정지선 위반 차량이 약 70% 줄었다”고 했다. 성동구는 연말까지 24곳에 스마트 횡단보도를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다.
LED 유도등과 스마트 횡단보도는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운전자의 경각심을 높이는 옐로카펫이나 보행자의 올바른 신호대기 위치를 알려주는 노란 발자국처럼 교통안전 확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서울 양천구도 올해 스쿨존 4곳에 스마트 횡단보도를 설치하기로 했다. 폐쇄회로(CC)TV로 불법 주정차 차량을 실시간 감지해 과태료도 부과할 방침이다.
○공동기획 :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한국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 한국교통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tbs교통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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