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생명의 차창에서’ 쓴 日 가수 겸 배우 호시노 겐
일본 싱어송라이터 호시노 겐. 노래, 연기, 글쓰기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묻자 “목숨을 걸고 하는 즐거운 놀이”라고 답했다. 호시노는 시적인 가사, 세련된 솔(soul)풍의 편곡에 일본 특유의 친숙한 멜로디를 얹은 악곡으로 앨범마다 차트 정상을 차지하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민음사 제공
하필 아베 총리가 ‘건드린’ 이는 현재 일본 최고 인기의 남성 가수였다. 호시노 겐(39). 아베 총리 영상에 삽입된 것은 호시노가 집에서 통기타를 치며 지어 부른 ‘집에서 춤추자’ 영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는 가운데 수많은 패러디 영상으로 화제가 됐다.
일본 도쿄에 머무는 호시노를 서면 인터뷰했다. 호시노는 “떨어져 있어도 ‘누군가와 함께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재미난 콘텐츠가 없을까 궁리하다가 음악가로서 제가 해보기로 했다”며 운을 뗐다. 그는 “요즘에는 매일 올라오는 (따라 하기 챌린지) 동영상을 확인하면서 반대로 제가 힘을 얻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호시노의 책이 처음으로 한국에 정식으로 번역, 소개됐다. 일본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에세이집 ‘생명의 차창에서’(민음사)다. 담백한 단문의 고백이 진솔하다. 일식 주점의 단출한 기본 반찬처럼, 별것 아닌데 맛깔스럽다.
문체에서 음악적 리듬감이 떠오른다고 하자 호시노는 “음악이든 연기든 글이든 리듬감을 느끼는 게 아주 중요하다. 인간은 늘 심장박동을 느끼며 살고 있는 만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본다”고 했다.
호시노는 책의 제목에 대해 “옛날부터 인간의 몸이란 정신과 영혼을 넣은 상자와 같다고 느꼈다”고 했다.
“묘한 소외감이랄까,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경치를 바라본다는 감각이 있었어요.”
“저에게도 저 자신을 믿지 못하는 날들이 있었습니다.”
자리를 잡아가던 2012년, 호시노에게 벽력이 떨어졌다. 지주막하 출혈 진단. 이듬해 머리뼈를 여는 대수술을 받았다.
‘이 둥그런 부분이 윙 소리를 내며 열리는 조종석이라고 생각하면 조그만 내가 ‘나’라는 로봇을 조종하는 기분이 들어서 무척 재미있다.’(‘생명의 차창에서’ 중)
호시노는 잃을 뻔한 생명의 차창에서 신나는 여행을 재개하듯 일상을 풀어낸다.
“일본은 아직 다양성이라는 면에서 보자면 부족한 부분이 있어요. 제이팝의 연애송도 남녀를 설정한 게 많은데 (저는) 그렇지 않은, 더 넓은 의미에서의 러브송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사랑이니 애정이니 말할 때 성별은 관계없어요.”
호시노는 “물론 결혼은 축복해야 할 일이지만 인류 공통의 목표는 아니잖나. 이제는 상식이 된 가치관을 노래에 충분히 반영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곡을 썼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영화에도 관심이 많다.
“선배 구니무라 준 씨에게 영화 ‘곡성’의 촬영 뒷이야기를 아주 흥미진진하게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 음악은 R&B와 힙합을 관심 있게 듣고 있습니다.”
그에겐 하루 24시간이 짧다. 답장을 쓰던 날에도 “오전 6시에 일어나 운동한 뒤 아침을 먹고 일을 조금 하다 (답장을 쓰려) 거실 탁자에 앉았다”고 했다.
“처음에는 저더러 ‘하나만 해’라고 조언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좋아하는데 어떻게 그만두지’라고 생각하며 아무것도 그만두지 않고 계속해 왔어요.”
한때 지독한 외톨이에 ‘자신감 제로(0)’의 수렁에서 시달린 그에게, 그와 비슷한 암흑기를 지나는 젊은이를 향한 조언을 부탁했다.
“대다수 의견에 아무 생각 없이 따르지 말 것, 늘 스스로 생각하고 그 생각을 멈추지 않을 것, 그리고 어떤 일을 하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것. 저 역시 그러한 자세를 늘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