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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구조-기능은 별개가 아니다”

입력 | 2020-05-21 03:00:00

2020 한국의 젊은 건축가들 <8>
건축사무소 PRAUD
임동우-라파엘 루나 공동 소장




미국 보스턴 다가구주택 ‘EEgress House’. 관습적 구성과 형태를 가진 건물이 줄지어 늘어선 지역에서 ‘비용과 규칙의 선을 준수한 파격’을 실천했다.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계단의 기능적 효율을 극대화함으로써 형태적 차별성을 드러냈다. ⓒ진효숙

한글이 없다.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이에게 건축사무소 PRAUD의 웹페이지 첫인상은 불친절해 보인다. 별도 링크로 운영되는 연구 프로젝트 사이트도 비전문가가 술술 읽을 만한 내용은 아니다. ‘현장 실무보다 학술 연구에 치중하는 사무소인가’ 생각하며 설계 사례들을 살펴보니 여느 사무소 사이트에서 보기 드문, 지극히 현실적인 항목이 눈길을 붙든다.

‘4억2900만 원.’

2018년 완공한 경북 포항 300m² 대지의 2층 주택 리모델링 건축비(토지가격 제외)다. 누구나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드러내놓고 밝히기 꺼리는 건축비 정보를 덤덤하게 제시해 놓았다.

“유럽과 미국 사무소는 한국과 달리 대체로 건축비를 공개한다. 예산은 건축주에게 최우선 고려 조건이다. 사무소 포트폴리오에 건축비가 나와 있으면 가진 돈으로 그 사무소와 어떤 건물을 지을 수 있을지 가늠하기 수월해진다. 비밀 정보가 아니므로 감출 까닭이 없다.”(임동우 소장)

임 소장(43)과 엘살바도르 출신의 공동대표 라파엘 루나 소장(39)은 2010년 미국 보스턴의 한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며 처음 만났다. 루나 소장은 “스타일은 서로 크게 달랐지만 건축을 통해 추구하는 지향점이 통했다. 늘 논쟁하면서도 흥미로운 타협점을 찾을 수 있는 건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해 말 보스턴에 사무소를 차린 두 사람은 ‘엇비슷한 공간 시스템을 복제하며 표피 바꾸기에 몰두해온 현대건축이 근대 이후 뭔가 본질적 진화를 이뤄낸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했다. 회사명 PRAUD는 ‘Progressive Research on Architecture, Urbanism and Design(건축, 도시, 디자인에 대한 진취적 연구)’의 약자다.

경북 포항시 ‘툴라단다사나 하우스’. 1층의 옛 벽돌구조를 유지한 채 2층에 철골구조 신축공간을 얹었다. 툴라단다사나는 한 다리로 서서 몸을 수평으로 유지하는 요가 자세다.

2018년 보스턴의 450m² 대지에 완공한 3층 다가구주택 ‘EEgress House’는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통념의 경계를 넘으려 하는지 보여준다. 이런 건물은 법규에 따라 반드시 출입(egress) 계단을 2곳 마련해야 하지만 한구석에 최소 규모로 만드는 계단 1곳은 대체로 제 역할을 잃고 창고처럼 방치된다. 두 사람은 이왕 만들어야 하는 기능적 요소인 계단을 건물의 얼굴로 내세워 형태적 요소로 활용했다.

“개인주택을 마련할 자금 여유가 없어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사람도 귀가할 때는 당연히 ‘독립적인 내 집 현관’에 들어서길 원한다. 2층 거주자용 계단 출입구는 서쪽에, 3층 거주자의 계단 출입구는 동쪽에 내고 각각 한 층 아래에서 ‘내 집 현관’의 느낌을 경험한 뒤 올라오도록 설계했다.”(임)

계단 하부 얼개는 건물 전면에 고스란히 드러내고 그 부분이 도드라져 보이도록 칠했다. 기능성을 높이기 위해 고안한 디자인이 건물의 형태적 차별성을 높이는 요소로도 작용하는 것. 임 소장은 “장식적 요소를 만들어 붙이는 데에 비용과 시간을 들이지 않으려 한다. 공간 시스템을 새롭게 구성하는 데 집중하면서 그 결과가 형태적 요소로 연결되도록 하는 접근법”이라고 했다.

인터뷰는 서울 성동구 사무소 앞에 이들이 최근 마련한 문화교류 워크숍 공간 ‘도만사(도시를 만드는 사람들)’에서 진행됐다. 23일 문을 여는 이곳에서는 다양한 주제의 공개 전시와 강연이 이뤄진다. 루나 소장은 “건물을 짓는 일만 건축이 아니다. 경계를 넘어 삶의 모든 담론을 아우르는 것이 건축이다. 건축가 스티븐 홀의 뉴욕 스토어프런트 갤러리처럼 풍성한 담론을 싹틔울 수 있는 통로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