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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 21개, 2200W 앰프 장착한 럭셔리카…이 순간, 차안은 콘서트장

입력 | 2020-05-22 03:00:00

[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
자체 조율 오디오 갖춘 ‘롤스로이스’… 소음 철저히 차단해 완벽한 소리 구현
뱅앤올룹슨 오디오 장착한 ‘벤틀리’… 12.3인치 터치스크린으로 세부 조절




자동차용 오디오에서 내는 소리에는 한계가 있지만, 럭셔리 카들은 상대적으로 환경이 좋다. Bentley Motors 제공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생활과 주거 환경을 비롯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로 자동차에서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럭셔리 카도 예외는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차량용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오디오 시스템은 강력함과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물론 자동차용 오디오는 아무리 좋아도 좋은 소리를 기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오디오 애호가들과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는 자동차의 물리적 특성 때문이다. 실내로 각종 소음이 들어오기 쉬운 것은 물론 좌석처럼 소리의 전달을 가로막는 요소들이 많고, 스피커의 소리를 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클로저(울림통)로 쓸 공간이 작아 풍부한 소리를 내기 어렵다. 게다가 자동차용 전기 시스템의 전압은 가정용 전원보다 훨씬 낮아, 활기찬 소리를 내는 데 필요한 높은 출력을 안정적으로 얻을 수 없다.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로 자동차용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의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Bentley 제공

다만 오디오 관점에서 보면 럭셔리 카들은 여러 면에서 다른 차들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환경이 좋다. 대형 세단은 비교적 여유 공간이 넉넉할 뿐 아니라 진동과 소음을 최대한 억제해 잡음이 끼어들 틈이 훨씬 작다. 롤스로이스가 대표적인 예다. 롤스로이스는 자체적으로 조율한 비스포크 오디오(Bespoke Audio)를 최상위 시스템으로 갖고 있다. 특정한 오디오 전문 브랜드의 이름을 빌리지 않은 롤스로이스 고유의 시스템으로, 그 바탕에는 철저한 소음 차단 노력이 있다.

롤스로이스 컬리넌의 오디오 스피커. 차체가 클수록 풍부한 소리를 기대할 수 있다.Rolls-Royce Motor Cars 제공

롤스로이스 팬텀의 비스포크 오디오 스피커. Rolls-Royce Motor Cars 제공

예를 들어 최상위 모델인 팬텀에는 여러 단계의 코팅이 되어 있는 6mm 두께의 차음 유리가 쓰이고, 차체 전체에 쓰인 방음 및 차음 소재의 무게만 130kg에 이른다. 일반 타이어보다 소음을 크게 줄인 특수 제작 타이어를 달아 다른 소리가 끼어들 여지를 최소화했다. 여기에 실내의 소음을 감지해 능동적으로 상쇄하는 시스템까지 있어, 팬텀의 뒷좌석에 앉은 사람은 1300W 출력의 18채널 18스피커 시스템에서 나오는 소리를 더욱 선명하게 들을 수 있다.

다른 럭셔리 카 브랜드들도 오디오 시스템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내로라할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와 손잡고 시스템을 개발하는 브랜드가 많다. 재미있는 것은 자동차 브랜드의 국적과 협업하는 오디오 브랜드의 국적이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벤틀리는 기본 오디오 외에 뱅앤올룹슨 시스템을 선택할 수 있고, 나임 오디오(Naim Audio) 시스템을 최상급 선택사항으로 갖추고 있다. 아직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은 신형 플라잉 스퍼에는 21개 스피커와 2200W 앰프, 액티브 베이스 트랜스듀서를 포함하는 시스템을 넣을 수 있다. 이 시스템은 대시보드 가운데에 놓인 12.3인치 터치스크린을 통해 세부 설정을 조절할 수 있다. 스피커 그릴에는 전용 조명이 더해져 시각적인 즐거움도 함께 준다.

영국에 뿌리를 둔 하이엔드 나임 오디오는 2008년에 처음 벤틀리와 협업을 시작한 이후 콘티넨털 GT에서 벤테이가에 이르기까지 여러 모델의 오디오 시스템을 함께 조율해 왔다. 이와 같은 협력관계는 벤틀리에 설치된 차량용 오디오에 그치지 않고, 나임 포 벤틀리 뮤조(Mu-so)라는 이름의 홈 오디오로 이어졌다. 나임 포 벤틀리 뮤조는 나임 오디오가 벤틀리 차량용 시스템에 쓴 기술과 디자인, 색상 등을 반영해 만든 것이다. USB를 연결하거나 무선으로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와 연결해 음악을 재생할 수 있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 600에 설치된 부르메스터 오디오 시스템처럼 럭셔리 카오디오에서는 시각적 즐거움도 중요하다. Daimler 제공

메르세데스마이바흐의 오디오 파트너는 독일 브랜드인 부르메스터(Burmester)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클래스에는 기본 오디오 시스템 외에 부르메스터의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과 하이엔드 3D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기본 오디오 시스템은 열 개 스피커 구성인 데 비해 상위 시스템인 하이엔드 3D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은 24개 스피커와 24개의 개별 앰프 채널, 1540W의 총출력을 자랑한다. 앞 도어 유리가 시작되는 부분과 뒤 도어 앞쪽에 자리를 잡은 트위터는 오디오 시스템을 켜면 360도 회전하면서 앞으로 튀어나오고, 실내 무드 조명과 함께 빛을 내어 분위기를 돋운다.

부르메스터 시스템은 메르세데스마이바흐 외에 메르세데스AMG, 포르쉐 등 주로 독일 브랜드 차들에서 볼 수 있다. 사실 부르메스터가 자동차용 오디오로 발을 넓히기 시작한 것은 2005년에 첫선을 보이며 부가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16.4 베이론을 위한 시스템이었다. 부가티는 프랑스에 뿌리를 둔 브랜드지만 폭스바겐 그룹 산하에 있는 만큼 부르메스터와의 협업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현재 부가티가 만들고 있는 시론에는 독일 브랜드인 아큐톤(Accuton)의 시스템이 쓰이고 있다. 이 시스템은 고음을 내는 네 개의 트위터에 각각 1캐럿 다이아몬드 멤브레인을 쓴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무래도 자동차에서 완벽한 오디오 시스템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럭셔리 카에 전동화 바람이 분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전기차에는 자동차에서 진동과 소음을 만들어내는 가장 큰 요소로 꼽히는 엔진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나오고 있는 여러 전기차를 시승해 보면 조용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기술의 발달로 전기차에서 이런 소음들까지 완벽히 없앨 수 있다면, 럭셔리 카는 ‘달리는 콘서트 홀’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