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기준 위반시 상장폐지 골자… 알리바바 등 165곳 사정권 미중관계 더 험악해질듯
미국의 회계감사 기준을 따르지 않는 중국 기업을 증시에서 퇴출시킬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20일(현지 시간) 미국 상원에서 통과됐다. 미중 관계가 더 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중국 기업들이 미국 증시에서 이탈하려는 흐름이 가시화되고 있다.
미 상원은 이날 ‘외국 기업 책임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미 증시에 상장된 외국 기업이 외국 정부 소유이거나 외국 정부에 통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도록 규정했다. 미 상장회사회계감독위원회(PCAOB) 기준 회계감사를 3년 연속 통과하지 못하면 주식을 거래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모든 외국 기업을 대상으로 하지만 사실상 중국 기업을 겨냥한 ‘표적 법안’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 정부는 자국의 기업이 미국 내 규정을 따르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데다 법안이 “외국 정부 소유나 통제를 증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2019년 현재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나스닥 등에 상장된 중국 기업은 알리바바, 바이두, 징둥(京東)닷컴, 페트로차이나 등 165곳이다. 법안이 하원을 통과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하면 미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은 미 회계 기준을 따라야 한다. 중국 정부가 기존 방침을 고수하면 중국 기업의 미 증시 상장이 막힐 수 있다. 또 3년 연속 이를 위반하면 미 증시에서 퇴출될 수도 있다.
이번 법안으로 중국 기업이 대거 월가를 탈출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미국에 상장된 중국의 대형 인터넷 포털 및 게임 기업 넷이즈와 전자상거래 기업 징둥닷컴 등이 이르면 다음 달 홍콩 증권거래소에 2차 상장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나스닥에 상장해 현재 시가 총액이 400억 달러가 넘는 넷이즈의 경우 홍콩거래소에 상장해 10억∼20억 달러를 조달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알리바바와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징둥닷컴 역시 6월 홍콩 상장이 유력하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징둥은 이번 기업공개(IPO)에 돌입해 올 홍콩 증시 최대 규모인 30억 달러 조달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앞서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는 2014년 9월 나스닥에 상장한 데 이어 2019년 11월 홍콩에 2차 상장했다.
중국의 대표 기술 기업인 바이두(百度) 리옌훙(李彦宏) 회장은 미국의 중국 증시 제한 움직임에 대해 21일 “좋은 회사라면 상장 장소로 택할 수 있는 곳이 많고 절대 미국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리 회장은 또 “우리는 미국 정부의 압박이 회복 불가능한 수준의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걱정하지 않는다”며 “내부적으로는 홍콩 2차 상장을 포함한 가능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장에서는 올 초부터 나스닥 상장사인 바이두가 홍콩 거래소에 2차 상장을 추진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진 바 있다.
1997년 이후 중국 기업은 미 증시에서 IPO를 통해 660억 달러를 조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미 증시 전체 IPO의 약 18%(25개)가 중국 기업이었을 정도로 월가의 중국 기업 의존도가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 “NYSE와 나스닥 규정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면 그들(중국 기업들)은 영국 런던으로 옮기거나 홍콩으로 가겠다고 할 것”이라며 이를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