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시대 ‘고용연장’ 논의
올해는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의 상징인 ‘58년 개띠’의 연금 수령이 시작되는 해다. 만약 70만 명이 넘는 ‘58년 개띠’들에게 주요 기업이 월급 약 240만 원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어 준다면 정부는 소득구간별 차이는 있지만 연금을 감액해 지급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정부의 재정 부담을 덜어줄 방법을 고민하던 중 나온 아이디어가 ‘노년층 일자리 만들기’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년 연장을 의미하는 노년층의 고용 연장에 대한 정부와 노동계, 시민사회의 요구도 높아진 상태다. 올해 2월 문재인 대통령은 “고용 연장을 본격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다”고 언급했고 노동계도 노후소득 보장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 정부는 왜 정년 연장을 원할까
“2020년부터 10년 동안 65세 이상 노인은 매년 48만 명씩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통계청)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 가는 나라로 꼽힌다. 지금 속도라면 2025년이면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20%가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반대로 생산가능인구(15∼65세)는 매년 줄고 있다. 통계청은 올해부터 10년 동안 매년 32만 명씩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도 사실상 정년 연장을 의미하는 ‘고용 연장’을 고민하고 있다. 변화하는 인구 구조에 맞춰 노년층도 일할 수 있는 경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법적 정년을 올리는 데는 신중하다. ‘정년 연장’이 아니라 ‘고용 연장’이라고 선을 긋는 이유다. 정년을 높이려면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 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촉진법)’을 고쳐야 한다. 2017년 만 58세에서 만 60세로 연장한 지 3년 만에 추가로 정년을 하기에는 동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꺼낸 카드가 ‘계속고용제도’다. 지난해 9월 ‘범부처 인구정책 태스크포스(TF)’는 2022년부터 계속고용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기업에 정년 이후에도 근로자를 계속 고용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제도다. 일본의 계속고용제도를 모델로 삼았다.
송홍석 고용노동부 통합고용정책관은 “정년 연장은 임금 등 근로조건이 그대로 유지돼 기업에 부담이 크지만 재고용을 하면 근로 조건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어 기업 부담이 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정년 연장 및 고용 연장의 필요성은 사회복지, 연금 등 국가의 제도적 기반이 고령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실제 국민연금 수급 시기는 2023년 63세, 2028년 64세, 2033년 65세로 늘어난다. 이대로라면 정년(60세) 이후 연금을 받기까지 ‘소득 공백기’가 점차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강훈중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홍보본부장은 “정년과 국민연금 수급 시기가 더 벌어지면 노후 빈곤 문제를 피할 수 없다”며 “정년 연장이 아니더라도 일할 수 있는 시기와 연금 수급 시기는 일치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 “정년 연장은 청년층 고용 감소로 이어질 것”
정년 연장은 고령층 일자리를 늘리는 효과를 낸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018년 정년 의무화의 입법 영향을 분석한 결과 법률 개정의 수혜자인 1957년생과 1958년생 근로자가 55세 또는 57세에 도달한 이후 60세까지 계속 일할 확률이 1952∼1956년생 근로자에 비해 높았다.
정부가 모든 사업장을 대상으로 정년 60세를 의무화한 시기는 2017년으로 불과 3년 전이다. 실제로 기업 평가 사이트 CEO스코어가 국내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2015∼2019년 고용 및 근속연수 현황을 분석해 보니 정년 연장 뒤 청년 채용문은 실제로 더 좁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직원의 평균 근속연수가 늘어난 상위 20개 기업 중 절반이 넘는 14곳의 직원 수는 정년 2015∼2019년 동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4년 동안 직원 근속연수가 가장 많이 늘어난 S&T모티브(5.7년)의 경우 전체 직원 수는 910명에서 766명으로 144명(15.8%)이 줄었다.
정년 연장의 혜택이 대기업과 공공기관에 국한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KDI 분석 결과 기업 규모가 클수록 고령층 고용 증가 효과가 크게 나타났고 공공기관에서는 청년 고용 의무로 인해 정년 연장 이후 청년 일자리가 줄어드는 부작용이 없었다. 남상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년 연장의 사회·경제적 파급 효과 분석’ 보고서에서 “정년 연장으로 인해 불평등을 완화하는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정년 연장의 혜택이 소득분포상의 고소득자들에게 주어지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했다.
○ 기업 “기업에 사회적 비용 넘기나”
노조의 입김이 강한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도 정년 연장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기자동차 시대가 다가오면 필요 인력이 급감하기 때문이다. 기존 내연기관차 부품은 2만∼3만 개에 이르지만 전기차로 전환되면 엔진, 변속기 등 부품이 30% 이상 줄어든다. 이에 따라 완성차 생산에 필요한 인력도 현재보다 20∼40%까지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미래차로 인한 변화 자체도 위기로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고용 연장 방안까지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물론 국내 기업도 한국 사회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노인 빈곤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년층 일자리가 중요한 화두라는 데 이견이 없다. 다만 정년 연장 이전에 한국 기업의 임금 체제 개편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는 정년 후 재고용하면 근로조건을 바꿔 비용 부담이 덜할 것이라지만 이미 임금을 많이 받는 임직원의 임금체계를 완전히 흔들긴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은 미국 일본과 달리 연공서열 임금체계로 오래 다닐수록 더 많이 받는 구조다. 미국은 직무 중심이고 일본은 1990년대 후반부터 임금과 생산성을 연계하기 시작했다. 정년을 보장하는 대신 일정 연령을 기점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 도입도 더디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도입된 임금피크제가 300인 이상 기업 중 54.8%(2018년 기준), 300인 미만 기업은 21.3%만 시행 중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정년 연장이 된 2017년 이후 기업 인건비 부담 증가, 조기퇴직률 증가, 청년실업 악화, 노동시장 양극화 심화 등 오히려 부작용이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근로조건을 다변화할 수는 있지만 기업에만 고용 부담을 넘겨서는 타협이 쉽지 않다”며 “기업이 60세 이후 고령 근로자들을 더 고용할 만한 유인책을 더욱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서동일 dong@donga.com·박성민 / 세종=남건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