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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원량의 SNS 계정 찾아와 위로 구하는 중국인들[광화문에서/윤완준]

입력 | 2020-05-25 03:00:00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리(李) 선생님, 지금 내 일이 매우 어렵습니다. 보잘것없는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함께 창업하고 싶지만 갈수록 사람들이 날 이해하지 못하고 동기를 의심합니다. 치욕을 주고 경시합니다. 삶이 이런 건가요? 당신이 내게 말해줄 수 있나요? 당신이 그때 억울함을 당할 때 어떻게 극복해냈나요. 나도 당신처럼 용감하게 버텨내고 싶습니다.”

24일 오전 4시 26분(현지 시간). 한 중국인이 의사 리원량(李文亮)의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웨이보 계정에 글을 올렸다. 리원량은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했다는 것을 처음 주변에 경고했다가 루머를 유포했다는 이유로 현지 공안(경찰)의 처벌을 받았다. 이후 환자를 진료하다 코로나19에 감염돼 2월 7일 결국 사망했다. 중국인들은 그를 ‘휘슬블로어’라고 부르며 추모한다.

이 글은 리원량이 사망하기 6일 전인 2월 1일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올린 생전 마지막 글에 댓글로 달렸다. 리원량이 사망한 지 3개월이 넘었지만 여전히 댓글이 끊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중국인이 단 댓글이 98만 개를 넘었고 곧 100만 개를 돌파할 기세다.

내용은 삶의 어려움, 심리적 고통을 털어놓는 글부터 일상을 전하는 글, 정치적 비판까지 다양하다. 계정에 매일 들러 리원량에게 안부 인사를 전하기도 한다. 이들은 세상을 떠난 리원량에게 마음속 답답함을 털어놓고 위로를 구한다. 중국을 휩쓴 코로나19가 거의 통제됐지만 많은 중국인이 여전히 심리적 상처에 시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24일에도 “리 선생님, 난 정말 열등감이 들고 약합니다.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라며 극단적 우울감을 호소하는 글이 올랐다. “오늘 어떤 말을 들었다. 한 국가의 신문에 모두 좋은 소식만 있으면 이 국가의 좋은 사람이 모두 감옥에 있다는 말”이라며 정부를 에둘러 비판하는 글도 눈에 띄었다. “정의는 사실 없다. 진리는 악독한 짐승의 손아귀에 장악돼 있다. 선량함이 죄악이 됐다”는 직설적 비판도 올랐다. “오늘 또 왔습니다. 잘 지내시죠? 매일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당신을 기억하고 보러 오네요. 기쁩니다”라며 리원량을 그리워하는 글도 많다.

댓글을 올리는 이들은 이곳을 통곡의 벽이라는 뜻의 ‘쿠창(哭墻)’이라고 부른다. 마음의 고통을 울면서 토로할 수 있는 장소라는 의미다. 어떤 이들은 나무 밑동의 구멍을 가리키는 말로 비밀을 털어놓는 장소를 의미하는 ‘수둥(樹洞)’이라고도 부른다.

리원량의 계정은 상처받은 사람들이 잠시나마 위로를 받는 피난처가 됐다. 한 중국인은 “당신(리원량)이 있어 즐거운 일이든 괴로운 일이든 공유합니다. 당신이 말없이 내 얘기를 경청해줘 감사합니다”라고 올렸다.

중국 정부는 코로나19 확산 기세가 완연히 꺾이자 ‘승리’를 얘기한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24일 기자와 만난 베이징(北京)의 직장인 왕(王·33·여)모 씨는 코로나19로 수입이 크게 줄어 월세를 내지 못할 지경에 이르자 고향 산시(山西)성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삶에 대한 태도가 비관적으로 변했다는 그도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