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금제 김종태 그림세계
귀에 들리지 않는 것을 들을 줄 알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능력을 총명(聰明)이라고 한다. 이러한 총명함으로 수묵을 사용하여 한정된 화면 위에 상외의 상을 염두에 둔 여백과 간결한 필선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사물의 본질적 특성과 정신을 그려내고자 하는 동양화는 채움보다는 비움, 복잡함보다는 단순 간결함, 분주함보다는 청한함을 선호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움과 단순 간결함, 청한함 속에 표현 이상의 보다 큰 채움과 복잡함, 분주함을 내포하고 있음이 동양화의 서양화와는 다른 특징이자 예술적 묘미이기도 하다.
금제 김종태님은 40여 년간 서예의 정도를 걸어온 한국 서예계의 거목이며 스승으로 한문의 모든 서체에 두루 일가를 이루었을 뿐 아니라 한문과 한글의 전통 필법을 융합, 융통해 선화체라는 독창적이고도 현대적인 미감의 한글서체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뿐 아니라 시, 서, 화 삼절로 이미 그 명성이 널리 알려졌고 한국화와 서양화를 두루 섭렵했으며 무위자연을 따르고자 한 품성은 산(자연)이야말로 그의 예술혼의 광맥이자 호연지기의 자유로운 영혼을 담을 수 있었던 커다란 그릇이었다.
금제 김종태님이 그려낸 산수화는 그러한 동양의 마음을 그렸으되 현대적 감각이 돋보이는 뫼산자를 원소로 삼아 심산의 실체를 그려낸 그 표현 기법의 독특함에 법고창신의 참신함과 기발함이 들어 있다.
금제 선생은 서예가답게 한자의 제자 원리 중 하나인 상형의 원리를 그림에 독창적으로 응용하여 자연(산)을 그려내었다. 그가 즐겨 그려낸 산은 일견 동양의 여느 산수화와 같은 준법으로 표현한 바위와 운무, 그리고 초목로 이루어진 그림으로 보인다. 또 그의 표현 기법은 서양의 신인상파들의 점묘법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치 점과 같이 작은 수많은 뫼산 자 초서가 제각기 다양한 방향과 형태로 쓰여 전체로서 고산준령을 이루고 있어 전통 준법과도 다르고 다양한 색채의 수많은 점으로 이루어져 시각적 혼색 효과를 얻고자 하는 19세기 말 신인상파의 점묘법과도 확연히 다른 서(書)와 화(畵)예술이 융화를 이룬 창의적 기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금제 선생의 산수 작품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마틴 스코세이지 영화감독의 명언을 떠올려보는 이유이다.
미술평론가 청원 이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