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전쟁 억제력 강화’를 언급한 직후 로버트 오브라이언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한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거듭 경고하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북-미 간 갈등이 다시 점화되는 양상이다.
오브라이언 안보보좌관은 24일(현지시간)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을 향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라”며 “북한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취지의 경고를 세 번 반복했다. 공개된 정보 뿐 아니라 정보기관에서 나오는 북한의 움직임을 전부 지켜보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기존 언론 인터뷰에서 그가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를 지속하고자 한다”는 취지의 원칙론을 강조했던 것과 비교하면 한층 민감해진 발언이다.
일각에서는 오브라이언 보좌관이 “북한에서 나오는 정보를 보면서 움직임에 따라 우리의 대응을 조절(calibrate)하겠다”고 밝힌 부분을 놓고 최악의 경우 미국이 무력 대응까지도 검토할 수 있다는 의미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찰스 리처드 전략사령관이 20일 ‘2020년 사령관 구상과 의도’를 공개하면서 “전략적 억지 실패시 ‘결정적 대응’을 하겠다”고 두 차례 언급한 것과 유사한 맥락이라는 분석도 있다.
동시에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도 열어놨다. 오브라이언 보좌관은 “지난 3년 반 동안 북한과의 충돌을 피해왔다”며 김 위원장을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탁월한 외교’를 언급했다. 북한의 세계 재편입과 훌륭한 경제를 거론하며 핵 포기시 북한이 얻게 될 대가도 재차 제시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로 북중 교역이 줄어들면서 경제 타격이 예상되는 시점에 북한에 던진 ‘당근’인 셈이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이런 방식으로 상황을 관리하며 북한의 도발을 막는 것 외에 다른 뾰족한 수도 없다. 코로나19 방역 실패 책임론에 시달리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칫 역풍을 부를 수 있는 북한과의 딜을 시도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우리의 대응도 달라질 수 있다”며 “그러나 북한이 아직 실제 행동으로 옮긴 게 없는 시점인 만큼 일단 움직임을 지켜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미국 대선 전 트럼프 행정부의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해 보여주기식 도발 카드를 꺼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은 이날 미국의소리(VOA)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핵전쟁 억지력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 일부러 적들의 눈에 띄고 분석을 유도하는 행동을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윤덕민 교수도 “북한이 올드 플레이북(old playbookㆍ오랜 전략)을 통해 한바탕 도발하고 국면이 출렁거리는 것을 이용해 미국과 핵 문제 논의를 꺼내려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