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과 정의연, 의혹 제기에 고압적 대응 진영논리 벗어나 국민 눈높이 맞춰 성찰해야
정연욱 논설위원
만약 야당이나 보수 진영에서 이런 문제점을 제기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범여권 인사들의 ‘어딜 감히’라는 한마디로 이슈는 정리됐을 것이고, 위안부 피해 당사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일갈이 아니었으면 ‘윤미향 사태’는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할머니의 첫 기자회견 이후 윤미향과 정의연이 불씨를 키운 측면이 있다. 자신들의 해명이 수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윤미향이 거주하는 아파트 경매자금 출처에 대해선 “기존에 살던 아파트를 팔아서 조달했다”고 했다가 불과 반나절 만에 “적금을 깼다”고 말을 바꿨다. 윤미향은 8년 전 일이라 기억을 못 했다고 했지만 살던 아파트 매도 시점과 경매자금을 낸 시점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된 직후였다. 딸의 미국 유학 비용에 대해선 장학금을 받았다고 했다가 뒤늦게 남편이 받은 보상금이라고 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인지 시점에 대해서도 “합의 당일 알게 됐다”고 했다가 전날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여당과 청와대는 윤미향 사태의 폭발성에 주목하는 것 같다. 자칫 잘못 대응할 경우 여권이 그동안 다져온 정치적 가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다. 가치 투쟁에서 밀리면 지지층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윤미향이 이번 비례후보 포스터에 올린 구호는 ‘21대 총선은 한일전’이었다. 민족적 감수성에 호소하는 ‘반일 대 친일’ 구도가 승산이 있다는 의도가 엿보였다. 여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지난해 소속 의원들에게 배포한 보고서에서 “일본에 단호하게 대응하는 것이 총선에 유리할 것”이라고 적시했다. 윤미향, 정의연과 여권이 강경 반일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방증이나 다름없다.
이러니 윤미향, 정의연을 향한 의혹이 거세질수록 강경 친문 지지층 중심으로 ‘정의연 공격하면 토착 왜구’라는 구호가 퍼지고, 일부 친문 의원들은 윤미향 지원에 나서는 것이다. 윤미향 엄호에 나선 일부 여성단체들은 정의연과 비슷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 거주시설인 ‘나눔의 집’의 후원금 횡령·유용 의혹에 대해선 ‘각종 의혹을 투명하게 밝혀라’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정작 정의연에 제기된 의혹에 대해선 ‘악의적’이라고 감쌌다.
이 할머니는 어제 2차 기자회견에서 정의연이 “생명을 걸고 끌려간 위안부 할머니들을 쭉 이용해 왔다”며 검찰 수사에서 죄를 물어야 한다고 했다. 윤미향은 끝내 회견장에 나오지 않았다. 이제 정의연이 성찰할 시간이다. 피해자 중심주의가 단체 중심주의로 변질되지 않았는지, 좌우 진영을 뛰어넘어야 할 위안부 운동의 초심(初心)이 흔들린 것인지, 그래서 진보 기득권의 오만에 사로잡힌 점은 없었는지 짚어봐야 한다. 어설픈 진영 논리에 기댈 때가 아니다. 다시 전 국민을 바라보고 가야 한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