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도 못 막는 전기차 확산 속도 배터리 기술력 선점에 한중일 각축 韓기업-정부 협업으로 표준 선도하길
이상근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
최근 유가가 크게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전기차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올해 1분기 중국 신차 판매량의 3분의 1이 테슬라 전기차였고 한국에서도 231%의 성장으로 벤츠, BMW를 제치고 수입차 판매 1위에 올랐다. 시가총액도 테슬라는 100년 기업 GM과 포드 그리고 피아트를 합친 것보다 높다. 순수 전기차는 테슬라와 중국의 BYD가 선두주자다. 특히 BYD는 2018년 ‘중국의 실리콘밸리’ 선전(深(수,천))의 모든 택시와 버스를 전기차로 보급했고 그해 23만 대를 팔았다. 수소전기차는 현대차가 2013년 ‘넥쏘’로 세계 시장을 개척했지만 도요타가 이듬해 ‘미라이’를 내놓으면서 경쟁하고 있다. 하이브리드카는 일본세가 강하다. 도요타는 1997년 ‘프리우스’를 출시한 후 다양한 모델로 20여 년간 1500만 대를 팔았다.
하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난제가 있다. 순수 전기차는 충전시간이 길고 가격이 비싸며, 높은 온도에서 폭발 위험과 함께 500번 이상 충전 시 배터리 성능이 급격히 저하되는 단점을 가졌다. 수소전기차는 수소충전소가 문제다. 폭발 염려 때문에 대도시 내 설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 정부의 노력에도 서울에는 4곳밖에 없다. 하이브리드카는 내연기관과 전기배터리를 동시에 설치해야 한다. 제조비용이 비싸 정부보조금이 없어지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차세대 배터리 기술력을 선점하고자 세계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중국은 2018년 칭다오 에너지를 앞세워 10억 위안(약 1700억 원)을 투자해 전고체 배터리 양산라인을 구축했다. 이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일본은 2021년, 한국은 2025년에 대규모 양산공장을 가동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LG화학과 GM도 알루미늄 음극재로 희토류인 코발트의 양을 70%가량 줄여, 배터리 가격을 크게 낮춘 ‘얼티움 배터리’를 내세워 시장을 공략하면서도 전고체 배터리에 과감히 투자하고 있다.
‘제2의 반도체’라 불리는 배터리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건강한 생태계 구성은 필수적이다. VCR(영상카세트녹화기) 시장에서 소니의 베타 방식과 파나소닉의 VHS(가정용비디오시스템) 방식은 표준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결국 수직적 합종이 아닌 수평적 연횡의 전략을 선택한 파나소닉이 ‘사실상의 표준(de facto standard)’ 지위를 확보했다. 전기차 시장에서 ‘사실상의 표준’을 인정받으려면 완성차, 배터리, 전장부품 기업의 수평적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기차는 부품 수가 내연기관차보다 3분의 1 이상 적은 커다란 ‘디지털 제품’이다. 디지털 제품은 신기술이 자리 잡으면 기존 기술은 폐기되는 ‘와해성’을 가진다. 배터리도 리튬이온전지가 나오자 기존 니켈전지는 시장에서 사라졌다. 디지털 제품의 수명은 매우 짧고 즉각적으로 대체된다. 대한민국이 정보기술(IT) 강국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붉은 여왕’이 되어 끊임없이 달려야 한다. 이를 위해 자율주행, 무선충전 같은 신기술의 과감한 도입과 유연한 글로벌 밸류 체인을 구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값싼 전기를 언제 어디서나 공급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공공 급속충전기 3000기를 설치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아직 1만1507곳의 주유소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전기차는 미래를 바꿀 제품이다. 한국은 조금 뒤처진 상황이지만 충분히 극복할 것이다. 산학연의 탄탄한 협력으로 세계 표준을 선도할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려 본다.
이상근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