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염기훈(왼쪽).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수원 삼성의 2020시즌 시작은 최근 몇 년간 그랬듯이 힘겨웠다. 2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2연패를 당한 데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뒤늦게 막을 올린 ‘하나원큐 K리그1 2020’에서도 개막 2연패를 당했다.
공식경기 4연패로 인한 타격은 상당했다. 온갖 비난과 조롱이 쇄도하면서 선수단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그래도 모두의 무게가 똑같은 것은 아니다. 베테랑 공격수 염기훈(37)의 가슴 속은 더 타들어갔다. 2010년부터 수원 유니폼을 입은 그다. 군복무 기간을 제외하면 올해가 10번째 시즌이다. 수원과 동행하면서 화려한 영광보다 가슴 아픈 기억이 더 많았어도 직접 내린 선택이기에 후회는 없다.
그래도 힘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K리그1 3라운드 홈경기가 열린 23일 수원월드컵경기장. 캡틴 완장을 차고 킥오프를 맞이한 염기훈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무조건 승점 3을 얻어 반등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마음은 만신창이,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이를 악물고 뛰었다.
후반 15분 직접 해결사로 나섰다. 앞선 2경기를 무실점으로 막아 ‘짠물 수비’로 명성을 떨친 인천을 무너트린 페널티킥(PK)을 성공시켰다. 그의 시즌 1호 골은 결승포가 됐다. 어두운 낯빛을 풀지 못한 수원 이임생 감독도 종료 휘슬이 울린 뒤에야 살짝 미소를 지을 정도로 부담이 컸다.
경기 후 남긴 염기훈의 코멘트에 고참과 맏형으로서의 고충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주장으로, 큰 형으로 부담이 많았다. 선수들을 끌어가기 위해선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줘야 했다. 후배들이 힘들 때 한 발 더 뛰겠다는 각오로 임했다”고 털어놓았다.
수원에서 염기훈의 비중은 상당하다. 모기업의 관심 감소, 그로 인해 빡빡해진 살림살이 때문에 수원의 전력은 예전과 전혀 다르다. 상당수가 국가대표로 채워진 시절은 오래 전 일이 됐다. 스쿼드가 빈약해진 뒤 염기훈에게 여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올해 치른 3경기에서도 그의 역할은 각각 달랐다. 8일 전북 현대와 원정 개막전에선 타가트와 함께 전방에 섰다. 17일 울산 현대와 홈 2라운드에선 투톱의 뒤를 받치는 미드필더로 내려섰다. 인천전은 박상혁과 공격 2선에서 호흡을 맞췄다.
염기훈은 측면을 책임질 때, 특히 왼쪽 날개로 섰을 때 가장 강하지만 여기저기 공백이 많은 수원은 베테랑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지게 한다. 앞으로도 다를 것 같지 않다. 특히 올해는 염기훈이 큰 결단을 내릴 시기다. 연말에 수원과 계약이 만료된다.
“오늘에 충실하자고 늘 다짐한다”는 염기훈은 “우리도 리듬을 찾는 것이 어려웠지만 상대도 마찬가지다. 라운드를 거듭하며 더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시즌이 짧고 경기가 적어 삐끗하면 강등 경쟁에 처할 수 있다. 더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