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경기도 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하나원큐 K리그2 2020‘ 제주 유나이티드와 부천FC1995 경기 후반전 제주 주민규가 선제 헤딩골을 성공시키고 있다. 부천|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아픈 추억을 공유한 팀들이 같은 자리, 같은 공간에서 보낸 93분. 여느 때와는 사뭇 다른 기운이 감돌았다. 저녁 무렵 내린 스산한 빗줄기의 영향은 분명 아니었다.
부천FC1995와 제주 유나이티드가 K리그 무대에서 드디어 조우했다. 26일 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2 2020’ 4라운드였다.
두 팀은 같은 뿌리였다. ‘유공 코끼리’로 출범한 SK프로축구단은 1996년부터 경기도 부천에 머물다(부천SK) 2006년 2월 제주도로 돌연 연고지를 옮겼다. 지금의 제주가 그렇게 탄생했다. 부천 팬들은 떠난 연인을 미워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팀 창단에 직접 나섰고, 아마추어 클럽으로 시작해 2013년 K리그 챌린지(K리그2)로 옮겨 지금에 이르렀다.
사실 두 팀의 첫 충돌은 아니다. 부천이 2013년 1월 동계전지훈련을 제주도에서 진행했을 때 연습경기를 치렀고, 제주가 2-1로 이겼다.
당연히 부천 팬들은 제주와의 ‘진짜 승부’를 고대해왔다. 그리고 제주가 지난해 K리그1(1부) 최하위(12위)에 그치며 K리그2(2부)로 강등되면서 꿈이 현실이 됐다. 공교롭게 올 시즌 부천이 개막 3연승, 제주가 1무2패로 엇갈린 상황에서 만나 흥미를 더했다.
서로 얽힌 스토리를 잘 아는 선수들은 물기를 잔뜩 머금은 그라운드에서 치열하게 부딪혔다. 쓰러진 상대를 일으키고 다독이는 훈훈한 장면도 연출됐지만, 몸을 사리지 않는 거친 파열음과 매서운 충돌이 대부분이었다.
벤치도 쉴 틈이 없었다. 두 사령탑 모두 부천에 몸담았다. “팬들이 기다린 승부”란 짧고 굵은 각오를 다진 부천 송선호 감독은 1988년부터 1996년까지 유공·부천SK에서 뛴 ‘원 클럽 맨’이고, “부담을 버리고 자신감을 되찾겠다”는 메시지를 전한 제주 남기일 감독은 1997년부터 2003년까지 부천SK의 핵심 멤버로 활약했다.
비록 무관중 경기였지만 장외 열기도 뜨거웠다. 혹시 모를 소요 사태에 대비해 평소보다 많은 경호인력이 배치됐고, 신문·방송·온라인 등 다양한 매체가 현장에서 K리그의 새 역사를 조명했다.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다양한 영상을 내놓고, ‘절대 잊지 않을 그날, 부천 축구는 계속 된다’를 슬로건으로 내건 부천 구단 역시 손님맞이를 열심히 준비했다. 17일 부천 팬 수십 명이 경기장을 찾아 오직 제주전만을 위한 한정판 응원전을 직접 녹음했다. 구단도 음향업체를 섭외하며 생생한 응원가와 구호를 담아내는 정성을 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