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동 경제부 차장
사달이 났던 2013년은 복지 수요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던 때였다. 전년도 대선에서 관련 공약이 난무하면서 그해 편성된 정부 복지 예산은 사상 처음 100조 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경기가 최악으로 치달으며 세수는 줄고 필요 재원만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정부는 증세 없이 이 돈을 마련해 보겠다며 나라 저금통을 탈탈 털고 심지어 지하경제를 양지로 끌어내 세수를 늘려보겠다는 계획까지 꾸며냈다. 하지만 모든 게 실패로 돌아가자 결국 소득세 환급액을 대폭 줄이는 ‘꼼수 증세’를 시도하면서 국민의 뒤통수를 치고 말았다.
7년 전의 얘기가 아직도 유효한 것은 지금 나라 경제 사정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고령화로 복지 수요가 커지는 마당에 코로나발 경제 위기가 길어지면서 재정 의존도는 더욱 커졌다. 돈 쓸 곳이 늘어나는 반면 국세 수입은 계속 줄어들며 곳간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아직 증세에 대해 거리를 두고 있다. 25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대통령은 지출 구조조정의 필요성만 언급했을 뿐 세입 기반을 늘려야 한다는 메시지는 내놓지 않았다. 기획재정부 관료들도 “전혀 검토한 바 없다”는 식으로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우리나라는 재정 여력이 아직 남아 있고, 세금을 더 거두면 경기를 꺼뜨릴 수 있다는 등의 이유를 댄다. 물론 속으로는 중산층을 포함한 보편적 증세가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는 점을 우려하는 것 같다.
하지만 증세 문제가 언젠가는 우리 사회가 공론화해야 할 주제라는 데는 전문가들도 이견이 없다. 아무리 우리 재정 상태가 양호하다 해도, 고령화로 복지 지출이 계속 늘어나는 마당에 언제까지나 국채 발행에 의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만약 증세를 추진한다면 전 정부의 전철을 밟지 말고 솔직하게 이해를 구하며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호기롭게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풀었으면 그 뒷수습도 해야 한다는 걸 이 정부도 알아야 할 것이다.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