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제-백신 개발 현장
한국파스퇴르연구소의 ‘생물안전(BL) 2등급’ 실험실에서 BL3에서 사용할 바이러스에 감염시킬 세포에 약물 처리를 하고 있다. 성남=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한국파스퇴르연구소 제공
구자룡 논설위원
영국 케임브리지대 유전학 연구팀이 세계 각 지역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크게 A, B, C 세 유형이라며 내린 진단이다. 중국 우한(武漢)에서 첫 환자가 발생한 뒤 약 5개월 만에 나타난 현상이다. 국내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이 세 가지가 섞여 들어왔다고 질병관리본부는 밝혔다.
코로나19는 ‘전파력과 치사율이 반비례한다’는 바이러스의 생존 원리와 달리 무증상 감염 등으로 높은 전파력을 보이면서 일부 국가에서는 10% 넘는 치사율(인플루엔자는 0.1%)까지 보였다. 이제 여기에 인체 면역 방어에 맞서 변신하는 교활함까지 갖추면 ‘최후의 병기’로 여겨지는 백신 개발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코로나19는 언제든 2차, 3차 대량 확산이 나타나 엔데믹(풍토병처럼 감염 반복)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때문에 지금 세계 각국은 백신 개발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경쟁 상대는 글로벌 제약사
바이러스 침투를 막기 위해 완전 무장 방호복을 입고 BL3 실험실에서 작업 중인 연구원. 성남=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한국파스퇴르연구소 제공
연구소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1500개 약물 중 24개가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SK케미칼의 기관지 천식 치료제 알베스코의 ‘시클레소니드’ 성분은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류왕식 연구소장은 “혈액 항응고제 및 급성 췌장염 치료제 성분 ‘나파모스타트’는 임상 단계 전 세포 단위에서는 렘데시비르보다 수백 배 높은 효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에볼라 치료제로 개발 중인 렘데시비르는 FDA가 최근 코로나19 표준 치료제로 긴급 승인한 약물이다. 아직 렘데시비르처럼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코로나19 치료에 큰 역할을 할 약물을 국내 연구진이 찾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연구소가 수천 종 약물을 짧은 시간에 대량 검사해 코로나19 항바이러스 성분을 가진 것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은 로봇까지 활용해 24시간 약물 효과를 영상으로 확인하는 첨단 ‘페노믹 스크리닝(Phenomic Screening)’ 기술과 장비를 갖췄기 때문이다. 한국이 글로벌 제약업체와의 경쟁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많은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한국 정부의 백신실용화사업단 예산은 119억 원. 예비비와 추경으로 60억 원이 추가됐다. 미국 제약업체 모더나가 연방정부에서 받는 지원금만 5억 달러(약 6000억 원)다.
백신 임상시험 동참
‘페노믹 스크리닝’ 작업을 하는 로봇. 성남=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한국파스퇴르연구소 제공
김 연구원은 “1, 2단계 시험이 끝나도 국내에서는 ‘3상 시험’ 결과는 늦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감염이 크게 줄어 다수의 ‘자연 감염’ 상황이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 백신 개발이 속도를 낼 수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신규 환자 발생이 많아 대규모의 자연 감염이 필요한 3상 시험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제약업체 모더나가 최근 임상 1단계에서 백신 후보 물질 접종 후 8명에게서 항체가 생겼다고 발표했다가 실효성이 의심된다는 비판이 나오는 소동을 빚었다. 얼마나 백신 개발에 목말라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인체 유발 반응 시험’
문제는 1, 2단계에서 효능이 입증돼도 관건은 3상 시험이다. 대상 인원이 2500∼1만 명으로 늘어나는 데다 접종 후 자연 감염에 노출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신약이나 백신 개발에서 3상을 통과하지 못하거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백신을 맞고 인공으로 바이러스에 노출시키는 ‘인체 유발 반응 시험(HCT·Human Challenge Trials)’을 위한 지원자가 늘고 있어 주목된다. 미 시민단체 ‘하루라도 빨리(1Day Sooner)’의 HCT 지원자 모집에 102개국 2만5104명(26일 현재)이 등록했다.
“나는 젊고 건강한 학생이다. 보다 빠른 백신 개발을 돕고 싶다. 시험의 중요성이 개인적인 위험을 능가한다고 생각한다.”(영국 서리) “지금 시기는 사람들이 용감하게 보다 큰 사회의 선(善)을 위해 나서주기를 요구한다.”(미국 세인트폴) “나는 개발도상국 출신이다. (시험 참가로 백신이 개발되면) 개도국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케냐 나이로비) 몇몇 지원자의 출사표는 비장하다.
HCT는 인플루엔자 말라리아 장티푸스 뎅기열 콜레라 백신 개발에도 사용됐다. 하지만 코로나19처럼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는 위험이 높다. 지원자 범위를 20∼45세(보통 19∼54세)로 좁히고 감염이 확인되는 즉시 최상의 치료에 나서는 등 위험을 줄인다고 하지만 백신 개발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다. 지원자에게 대가는 일절 없다.
‘백신은 인류의 공공재’
김승택 연구팀장은 △국제사회의 협력 △북미 유럽 등 선진국에 환자가 많아 시장이 크기 때문에 글로벌 제약사들이 발 벗고 나섰다는 점 △변이가 많다는 RNA 바이러스 치고는 아직은 변이율이 높지 않은 점 △코로나19가 사스, 메르스와 같이 ‘베타 코로나 바이러스’ 계열이어서 이미 알려진 정보도 적지 않은 점 등이 백신 개발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라고 말했다.
물밑 경쟁과 해킹 논란
스콧 고틀리브 전 FDA 국장은 “미국이 백신 개발에서 중국을 앞설 것”이라면서 “중국이 임상 단계에 들어간 후보 물질은 4개로 가장 많지만 미국과 유럽이 협력해 개발할 백신보다 면역 수준이 낮을 가능성이 있다”고 신경전을 폈다. 미국 정부는 중국의 해커들이 백신 및 치료제 정보와 기술 훔치기 시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의료기관이나 연구기관, 제약회사, 학계, 지방정부 등에 해킹 주의보도 보냈다. 중국은 인민해방군의 연구 역량도 동원하고 있다.
한국은 코로나19 초기 신속한 검사 진단 시약 개발과 선제적인 검사로 방역에 성과를 거뒀다. 이제 ‘치료약과 백신 개발’을 위한 2라운드 전쟁이 시작됐으나 한국은 여러 가지로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지지,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성남=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