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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운동 사유화… 정부가 손놓은 새 ‘과잉 대표성’ 갖게 돼”

입력 | 2020-05-27 03:00:00

[정의연 논란]원로 활동가-학자 정의연에 쓴소리




경기 안성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위한 쉼터 ‘평화와 치유가 만나는 집’. 안성=뉴스1

일본군 위안부 운동의 기틀을 잡은 원로 활동가와 이 분야에 정통한 학자들은 26일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운영 방식에 쓴소리를 했다. 이들의 제언은 전날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92)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과 다르지 않았다. 위안부 문제 해결의 주역이 될 미래 세대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선 반드시 민주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회복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 “원로 입장문, 윤미향 두둔처럼 돼 후회”


정의연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초기 멤버인 A 씨는 26일 위안부 운동의 방향을 묻는 질문에 “(정의연 이사장을 지낸)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자가 위안부 운동을 사유화하면서 모든 사태가 벌어졌다”라고 말을 꺼냈다. 그는 “윤 당선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수요집회에 나와 달라’는 말도 의미가 없다”고 했다.

A 씨는 엿새 전 윤 당선자를 옹호하는 취지의 입장문에 이름을 올렸던 데 대해 “후회한다”고 말했다. 그는 20일 ‘초기 정대협 선배들의 입장문’에 이름을 올렸던 원로 12명 중 1명이다. 당시 입장문엔 “윤 당선자는 오직 정대협 운동에 일생을 헌신한 사람”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A 씨는 “정대협 30년 활동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 같아 입장문을 낸 것인데, 윤 당선자를 두둔하는 것처럼 됐다. 그 후로 (윤 당선자에 대한) 새로운 의혹이 너무 많이 나와서 후회했다”라고 말했다.

A 씨는 윤 당선자가 정대협 상임대표에 오른 2007년을 회상하며 “그 이후로 의사 결정과 실무의 경계가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그전엔 공식 의사결정 기구인 ‘대표자 회의’와 별개로 ‘실행위원회’가 중요한 사안을 검토했는데, 윤 당선자 체제에선 일원화됐다는 얘기다. A 씨는 “지금은 (구성원끼리) 회의는 하지만 다 같은 편 일색이라 개인의 전횡을 막지 못한다. ‘1인 체제’를 깨고 단체 내부의 견제 기능을 되살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 “피해자 소외시키는 운동 방식은 잘못돼”


초기 활동가들은 정의연이 해외모금 활동 등으로 외연을 넓히면서 정작 위안부 피해 당사자를 소외시킨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25일 기자회견에서 “30년 동안 재주는 곰(피해자)이 부리고 돈은 (정의연이) 받아먹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위안부 문제 해결의 가장 우선적인 과제로 “오랜 세월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피해 사실을 밝히지 못했던 많은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는 점을 꼽았다.

피해자 명예 회복은 정대협 초기 활동가들에게도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고 한다. 정대협 초기 멤버인 B 씨는 “할머니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정대협이 만들어지게 된 궁극적인 목적이었다”면서 “지금은 여러 곁가지를 뻗으면서 무리가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대협이 매입한 경기 안성시 피해자 쉼터를 거론하며 “그 쉼터가 과연 필요했을까. (정대협의) 인력으로 감당할 수 있었을까. 지금 (사업에서) 곁가지를 쳐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또다른 정대협 창립 멤버 C 씨도 “사업을 여기저기로 펼치면서 정작 할머니들한테 뭐가 필요한지 잊었다”고 했다.


○ “투명성-전문성 확보해야”


원로 활동가와 학자들은 지금보다 높은 수준의 투명성과 전문성이 요구된다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사업 명세는 물론이고 단체 기부자와 국가보조금마저 공시에서 누락하는 지금의 주먹구구식 운영 방식으로는 위안부 운동 자체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C 씨는 “지금 정의연에 가해지는 지적은 ‘조금 더 투명해지라’는 세상의 사인”이라고 조언했다. B 씨는 “현금 모금의 특성상 영수증 처리 누락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현장 모금을 중단하라”고 제안했다.

전문가들이 중심이 되는 다원화된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어일본학과 교수는 “위안부 문제 해결은 근본적으로 정부의 책임인데, 이를 방기하는 사이에 정의연이 ‘과잉 대표성’을 갖게 됐다”라며 “지금이라도 정부가 전문가와 피해자들로 구성된 사회적 대화기구를 꾸려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소연 always99@donga.com·신지환·조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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