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승경의 어린이청소년극 평론집 ‘무한한 상상과 놀이의 변주’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에는 코끼리를 잡아먹은 보아뱀 그림이 나온다. 그런데 어른들은 보아뱀이 자기 몸보다 몇 배나 큰 코끼리를 잡아먹은 그림을 모자라고 말한다.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은 기이한 것에서 항상 평범함만 본다. 그들에게는 자신보다 훨씬 큰 코끼를 소화시키는 뱀이 모자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린이 공연에는 일반 연극이 가지고 있는 미적차원과는 색다른 특수한 심미적 예술이 깃들어져야 한다.”
연극평론가 황승경 씨가 펴낸 ‘무한한 상상과 놀이의 변주’(연극과인간)는 어린이 청소년 연극을 심미적, 예술적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분석한 국내 최초의 평론집이다. 2017년~2020년 1월까지 아시테지(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축제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공연된 52편의 어린이 공연무대를 직접 찾은 현장의 기록이다. 우리나라의 어린이청소년 공연계의 명암을 성찰하고, 변화의 방향을 모색하는 비평집이다.
극단 즐거운 사람들 ‘별난 가족 이야기’
올해는 ‘어린이’란 말이 쓰이게 된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어린이’라는 단어는 1920년 아동문학가 소파 방정환 선생(1899~1931)이 월간지 ‘개벽’에 번안 재창작시인 ‘어린이 노래-불 켜는 이’를 기고하면서 처음으로 쓰였다. 유년과 소년을 아울러 부르기 위해 새롭게 만든 ‘어린이’라는 지칭은 어린아이도 한 인격체라는 존중의 의미가 담겼다.
연극평론가 황승경은 이 책에서 “인간을 화성에 보내는 건 고성능의 발사체겠지만, 시도를 꿈꾸게 만드는 것은 바로 예술적 상상력”이라며 어린이들의 내면을 무한하게 키워주는 ‘연극적 상상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어린이극은 성인극보다 폭넓은 표현을 허가하기 때문에, 환상 공상 상상이 가미된 놀이와 유희는 어린이를 창의적 감수성에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시대의 지성으로 불린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1932~2016)는 늘 박학다식한 이론에서 흥미진진한 소설을 뽑아냅니다. 그는 그 원동력이 어린 시절부터 익숙했던 ‘연극적 상상력’에 있다고 했습니다.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도 ‘지식은 논리로 우리를 A에서 B로 인도하지만, 상상력은 우리가 어디로든 가도록 만든다’고 했습니다. 평생 우주의 비밀을 밝히는 연구를 해온 자신에 대해 ‘상상력을 자유롭게 연출하는 예술가’라고 말했죠.”
그는 “연극무대에서 펼쳐지는 환상은 우리를 갇힌 현실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넓고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로 인도해준다”며 “이러한 일탈의 기쁨은 생을 윤택하게 만드는 가치인 동시에 지적 탐구력을 배가시키는 원천”이라고 말했다.
극단 민들레의 베이비 드라마 ‘잼잼
실제로 이탈리아에서는 아장아장 걷기시작하는 돌쟁이 아이들을 위한 연극공연도 매주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토요일 이탈리아 볼로냐 테스토니 극장에서 열리는 라바라카 극단의 ‘베이비드라마’ 공연이다. 베이비드라마는 12개월, 24개월, 36개월 등으로 권장연령을 구분히 제작된다. 극적인 긴장감이나 기승전결 서사 줄거리보다는 오감이 자극되는 이미지와 부드러운 은유가 중심이라 아이들은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집중한다고 한다.
예술무대 산 ‘루루섬의 비밀’
“아동청소년극 헌장에는 ‘아동 청소년 연극은 성인연극과 우열의 차이가 아니라 형식과 목표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어린이 공연은 생물입니다. 배우의 대사 하나하나, 무대 위 오브제 하나하나가 어린이 관객의 연극적 상상력 성찰이라는 명제에 도달하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끊임없이 정제된 일종의 보석들이죠.”
국내에는 국립단체 중에 어린이 청소년 연극을 전문으로 하는 극단이 없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성장기 뜨거운 열정이 넘치고 감정적 변화가 심하지만, 정서적으로는 메말라 있는 중고생을 위한 청소년 연극이 해야할 역할도 강조한다.
“199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이탈리아 연극인 다리오 포는 어린이 연극의 목적은 평생 지닐 만한 불멸의 가치를 제시하는 데 있다고 했다. 이 가치는 처절하고 냉혹한 세상에서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힘이다. 우리는 다 특별한 사람이지만 불행히도 모두 다른 현실적 ‘수저’를 가지고 있다. 가난하다고, 못생겼다고 혹은 머리가 나쁘다고 해서 낙담하거나 불평하며 세상을 원망하지 않게 만들 ‘본인만의 고유의 가치’를 연극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극단 로.기.나래 ‘안녕 도깨비!’
연극평론가 황승경은 이화여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이탈리아 레피체국립음악원을 거쳐 성균관대학교 공연예술협동과정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연칼럼니스트, 예술교육가, 음악감독, 드라마터그로 활동하며 인하대, 대경대, 서울예대에 출강해왔다. 또한 매년 500교시 가량의 초·중·고등학교에 예술교육강의를 나가며 어린이청소년들에게 연극무대를 활용한 상상력 키우기 교육을 진행해왔다. 또한 극단 즐거운사람들과 함께 ‘노이우리’라는 영유아연극교육프로그램을 연구개발 제작했고, 어린이공연 작가로 활동하며 어린이집, 유치원 순회인형극공연을 연출해 진행했다. 올해에는 노원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유아예술교육프로그램 ‘일상을 예술로-Fun-Fun 공감 연극놀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에는 이런 글귀가 나온다.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에는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어른들에게 잊혀져버린 순수한 동심의 정서를 되찾게 하고, 심미적 심상회복을 독려할 목적이었을 것이다. 어린이 연극이 순백의 순수한 동심(童心)만을 고취시키는 특수한 공연장르로 인식돼서는 안된다. 어린이 연극을 인류 보편적 시대적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황승경의 어린이청소년극 평론집 ‘무한한 상상과 놀이의 변주’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