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들이 보이스피싱 범죄 정보를 담은 영상의 한 장면.
한성희 사회부 기자
최근 경찰 내부망인 ‘폴넷’에 올라온 한 게시물엔 댓글이 70개 넘게 달렸다. 게시물 제목은 ‘슬기로운 현장 생활, 보이스피싱 편’. 서울 강동경찰서 생활안전계 직원 9명이 지난달 촬영한 약 5분 길이의 동영상이다.
이 영상은 경찰이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자를 대할 때 흔히 저지를 수 있는 실수와 대처 요령을 담았다. 예를 들면, ‘전화 가로채기’ 수법에 대응하는 요령이다. 문자메시지로 전송돼 온 인터넷주소(URL)를 누르는 순간 악성 앱이 깔리는 범죄 수법이다. 한 번 앱이 깔리면 어느 쪽으로 전화해도 범죄자에게 연결된다. 이럴 경우 경찰은 상대방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지 않아야 한다. 이 역시 범죄자에게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영상이 많은 경찰의 호응을 얻은 건 ‘가벼운’ 방식으로 편안하게 조언을 건넨 덕이다. 영화 ‘타짜’(2006년)의 배경음악이 흘러나오는가 하면, 약간 어색하지만 진지한 연기도 펼친다. 출연 배우인 김혜수를 흉내 낸 정소라 경장(34)이 구수한 사투리로 “근디 요새 보이스피싱범들이 갈수록 독해져 부러”라고 말하는 장면은 누가 봐도 유쾌하다.
업무로 바쁜 경찰이 이런 일까지 하긴 쉽지 않았다. 촬영 도중 연락을 받고 현장으로 달려가는 일도 여러 차례였다. 편집을 맡은 이도현 경장(30)은 처음 접한 편집 일에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고 한다. 광고기획사에서 근무한 경험을 살려 기획과 연출을 맡은 이호영 순경(39)은 “물론 힘들었지만, 이런 ‘정보 공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오롯이 동료들 힘만으로 해내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경찰들이 영상 하나 만든 걸로 무슨 호들갑이냐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우선순위는 수사 잘하고 범죄자 검거를 잘하는 데 둬야 한다. 하지만 범죄를 막는 게 수사만으로 가능하진 않다. 수사 못지않게 현장 대응 매뉴얼을 잘 만들어 공유하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올해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그 중요성을 너무나 크게 실감하고 있지 않나. ‘슬기로운 ○○ 생활’이 경찰에 그쳐선 안 되는 이유다.
한성희 사회부 기자 che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