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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씨 일가가 핵에 집착하는 이유[오늘과 내일/신석호]

입력 | 2020-05-29 03:00:00

김일성이 체제의 중추 삼은 핵
김정은 포기 기대는 허망한 꿈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제7기 제4차 확대회의를 열어 “나라의 핵전쟁 억제력을 더 한층 강화하고 전략무력을 고도의 격동상태에서 운영하기 위한 새로운 방침들”을 제시한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당 최고 기구인 중앙위원회가 지난해 12월 28일부터 31일까지 열린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세상은 곧 머지않아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에 후속 조치는 당연히 나와야 할 터였다.

확대회의 발표문에 미국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은 지난해 12월과 다르다. 전원회의 때는 “앞으로 미국이 시간을 끌수록, 조미 관계의 결산을 주저하면 할수록 예측할 수 없이 강대해지는 위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며 미국의 양보를 요구하는 대목이 있었다. 미국과의 대화 기대를 버리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실험 등 전략 도발을 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읽히는 대목이다.

24일 조선중앙통신 보도로 회의가 알려진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이 시진핑 주석의 중국에 사실상의 신냉전을 선포하는 ‘미국의 대중국 전략보고서’를 20일 의회에 제출했다는 소식이 전 세계에 타전된 직후였다. 보고서는 중국에 대해 ‘약탈 경제’ 등의 비난을 퍼부으며 전략핵무기 3축 체계의 현대화로 힘을 통한 평화를 유지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강조했다.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북한은 10월 2일 SLBM 발사 실험을 했는데, 역시 미중이 핵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을 뽐내며 갈등하던 참이었다. 북한의 도발은 중국이 10월 1일 둥펑-41을 선보이고 미국이 2일(현지 시간) 미니트맨3 발사 실험을 한 직후에 이뤄졌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에 맞서며 ‘강대국 코스프레’를 해왔다. 이번에도 ‘당신이 핵무력을 강화하는데 우리도 가만있을 수 없다’는 명분을 들어 SLBM 발사 실험에 따르는 정치적 저항을 최소화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북한이 ‘미국에 얻어맞을 위험’을 피해 틈만 나면 핵무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북한의 김씨 일가는 왜 대를 이어 핵에 집착하는 것일까. 학자들은 세 가지 차원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최고지도자 개인의 인식과 선호(개인 차원), 수령 절대주의라는 북한 체제의 특수성(국가 차원), 세계정부가 없는 국제 체제에서의 안보 딜레마(국제정치 차원)가 그것이다. 고 케네스 왈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전쟁의 원인을 탐구해 쓴 고전 ‘인간, 국가, 그리고 전쟁(Man, the State and War)의 분석 수준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왈츠는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정부적 국제 체제라고 보았지만 김씨 일가의 핵 개발은 다른 것 같다. 모든 국가들이 아노미적인 국제 질서 속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국가 안보를 추구하지만 모든 국가들이 핵 개발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비슷한 조건의 독재정권이 모두 정권 안보를 위해 핵 개발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이보다는 ‘개인’ 나아가 ‘개인들’에 답이 있다. 김일성은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는 권력욕에 6·25전쟁을 일으킨 뒤 미국의 핵 공격 위협에 시달렸다. 전쟁 직후인 1950년대 중반부터 핵 개발을 시작했고 미국이 소련을 해체시키고 유일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1993년 1차 핵 위기라는 도박을 시작했다. 같은 경험을 한 북한의 전쟁세대들을 ‘미국은 우리를 핵으로 공격하려 한다. 좀 가난해도 핵을 가져야 너도 나도 살 수 있다’고 선동해 비정상적인 독재 체제를 구축하고 유지했다. 아들에게는 ‘핵을 들고 미국과 대치해야 권좌를 지킬 수 있다’는 진짜 유훈을 남겼을 것이다.

북한의 핵 보유 야욕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3대 세습 후계자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기대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지적하려는 것이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