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이 체제의 중추 삼은 핵 김정은 포기 기대는 허망한 꿈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확대회의 발표문에 미국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은 지난해 12월과 다르다. 전원회의 때는 “앞으로 미국이 시간을 끌수록, 조미 관계의 결산을 주저하면 할수록 예측할 수 없이 강대해지는 위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며 미국의 양보를 요구하는 대목이 있었다. 미국과의 대화 기대를 버리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실험 등 전략 도발을 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읽히는 대목이다.
24일 조선중앙통신 보도로 회의가 알려진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이 시진핑 주석의 중국에 사실상의 신냉전을 선포하는 ‘미국의 대중국 전략보고서’를 20일 의회에 제출했다는 소식이 전 세계에 타전된 직후였다. 보고서는 중국에 대해 ‘약탈 경제’ 등의 비난을 퍼부으며 전략핵무기 3축 체계의 현대화로 힘을 통한 평화를 유지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강조했다.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북한은 10월 2일 SLBM 발사 실험을 했는데, 역시 미중이 핵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을 뽐내며 갈등하던 참이었다. 북한의 도발은 중국이 10월 1일 둥펑-41을 선보이고 미국이 2일(현지 시간) 미니트맨3 발사 실험을 한 직후에 이뤄졌다.
북한의 김씨 일가는 왜 대를 이어 핵에 집착하는 것일까. 학자들은 세 가지 차원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최고지도자 개인의 인식과 선호(개인 차원), 수령 절대주의라는 북한 체제의 특수성(국가 차원), 세계정부가 없는 국제 체제에서의 안보 딜레마(국제정치 차원)가 그것이다. 고 케네스 왈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전쟁의 원인을 탐구해 쓴 고전 ‘인간, 국가, 그리고 전쟁(Man, the State and War)의 분석 수준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왈츠는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정부적 국제 체제라고 보았지만 김씨 일가의 핵 개발은 다른 것 같다. 모든 국가들이 아노미적인 국제 질서 속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국가 안보를 추구하지만 모든 국가들이 핵 개발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비슷한 조건의 독재정권이 모두 정권 안보를 위해 핵 개발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이보다는 ‘개인’ 나아가 ‘개인들’에 답이 있다. 김일성은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는 권력욕에 6·25전쟁을 일으킨 뒤 미국의 핵 공격 위협에 시달렸다. 전쟁 직후인 1950년대 중반부터 핵 개발을 시작했고 미국이 소련을 해체시키고 유일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1993년 1차 핵 위기라는 도박을 시작했다. 같은 경험을 한 북한의 전쟁세대들을 ‘미국은 우리를 핵으로 공격하려 한다. 좀 가난해도 핵을 가져야 너도 나도 살 수 있다’고 선동해 비정상적인 독재 체제를 구축하고 유지했다. 아들에게는 ‘핵을 들고 미국과 대치해야 권좌를 지킬 수 있다’는 진짜 유훈을 남겼을 것이다.
북한의 핵 보유 야욕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3대 세습 후계자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기대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지적하려는 것이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