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원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교수는 평일에는 퇴근하지 않고 병원 연구실에서 잠자는 생활을 15년째 하고 있다. 송 교수는 의사의 숙명이라며 “환자가 생존한다면 보상을 받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장면. 의사가 퇴근 후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하는데 ‘콜’이 온다. 응급 환자가 발생했단다. 의사는 식사 도중 병원으로 달려간다.
이런 장면, 송기원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교수(49)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퇴근 자체를 하지 않는다. 병원 연구실에서 새벽까지 연구를 하거나 학회 업무를 보다가 소파에서 눈을 붙인다.
집에는 토요일이 돼야 간다. 그나마 하루다. 일요일에는 병원으로 돌아온다. 가족이 섭섭해 하지 않을까. 송 교수는 “15년이 넘은 습관이라 그런지 가족도 이해한다. 그래도 요즘에는 집에 자주 가는 편”이라고 말했다. 2004년 서울아산병원 간이식 팀에 합류할 때는 한 달에 한 번 집에 갔다고 한다.
● “환자 생존하는 게 최고의 보상”
9년 전 한 여성이 송 교수를 찾았다. 출산 후에도 부른 배가 가라앉지 않아 다른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간암이란다. 암 세포가 혈관을 압박할 정도로 커져 있었다. 이미 폐로 전이돼 수술 불가 판정을 받았다.
송 교수는 그래도 수술을 결정했다. 우선 간의 일부를 잘라냈다. 이어 협진에 참여한 내과 의사가 항암 치료에 들어갔다. 송 교수는 수술 전에 그 환자와 약속했다. “갓난아기가 성장해 장가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수술은 잘 됐고 항암 치료도 무사히 끝났다. 그 환자의 아기는 지금 초등학교 2학년생이다.
간이 담즙을 만들지 못하거나 배출하지 못하면 치명적인 간 손상이 시작된다. ‘담즙정체증’이란 희귀병이다. 15년 전 한 소녀가 이 병에 걸려 간 이식을 받았다. 불운이 겹쳤다. 그로부터 10년 후 병이 재발해 간을 다시 이식받아야 했다. 환자의 가족은 많이 지쳐 있었다. 막대한 수술비를 감당하기도 힘들다 했다.
모두가 포기하려던 차에 송 교수가 나섰다. 가족을 먼저 설득했다. 병원 안팎으로 복지 기금을 물색했다. 뇌사자의 간을 기증받을 수 있는 천운까지 생겼다. 덕분에 간 이식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얼마 전 송 교수는 서른이 된 이 환자로부터 잘 살고 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송기원 교수(왼쪽에서 두 번째)가 간이식 수술을 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 “혈액형 일치하지 않는 이식 수술의 대가”
송 교수에 따르면 1996년 무렵 서울아산병원에서 혈액형이 일치하지 않는 ‘혈액 부적합 간 이식’ 수술이 처음 시행됐다. 당시 6세의 여자 아이가 간의 일부를 이식받았는데, 다행히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어린 나이라 면역 시스템이 확립돼 있지 않았고, 그 덕분에 외부 장기를 잘 받아들였던 것. 하지만 이후에 시행된 다른 간 이식 수술의 경우 1년 생존율이 50~60%다.
서울아산병원은 간 이식 분야에서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2000년 이후 혈액 부적합 간 이식 성공률도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송 교수는 2008년 11월 본격적으로 간 이식 분야에 뛰어들었다. 그 때부터 올 1월까지 서울아산병원은 660건의 혈액 부적합 생체 간이식 수술을 시행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술 기록이다. 이 수술의 상당수를 송 교수가 지휘했다. 수술 후 1년 생존율도 약 98%로 높아졌다. 송 교수는 “수술 직후 사망하는 사례는 거의 없으며 최근 환자들만 상대로 조사하면 5년 생존율도 90%를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 교수의 스승은 간 이식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이승규 교수다. 송 교수는 이 교수를 포함한 스승 세대를 ‘맨땅’에서 치료법을 찾아내고 정착시킨 개척자로 평가했다. 송 교수와 같은 제자 세대의 역할은 무엇일까. 송 교수는 “불가능한 수술이 더 이상 없게 하는 것, 수술 후 생존율을 높이는 것, 그리고 환자의 삶의 질을 올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에 따라 면역거부반응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이식된 간을 받아들이는 이런 현상을 ‘면역관용’이라고 한다. 송 교수는 이 면역관용을 의도적으로 작동시키는 방법을 찾고 있다. 이 방법을 찾는다면 면역억제제를 복용하지 않아도 되고, 나아가 면역 기능을 활용한 면역항암제 개발도 가능해진다.
2018년 송 교수는 유전자 변형 쥐를 대상으로 이 연구에 돌입했다. 사람의 간세포를 쥐에게 투입한 뒤 면역학적 변화를 살피고 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은 언제 가능할까. 송 교수는 “10년 이내에 될 것으로 본다. 내 의사 인생의 마지막 도전”이라고 말했다.
▼ 송 교수가 제안하는 간 건강법▼
간암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뭘까. 송기원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교수 “B형 바이러스 간염을 막고 술을 줄이는 것”이라고 했다.
전체 간암 환자의 75% 정도가 만성 B형 바이러스 간염 환자다. 이어 C형 바이러스 간염(8%), 음주(7%)의 순이다. 결국 B형과 C형 간염의 항체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C형 간염의 백신은 아직 없는 상태. B형 간염은 2, 3회 접종하면 항체를 만들 수 있다. 다만 사람에 따라 모든 접종을 끝내도 항체가 생성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의사와 상의해 다음 조치를 결정하는 게 좋다.
간암 환자의 상당수가 간경변(간경화) 증세를 보인다. 간경화의 원인은 다양하다. 무엇보다 비만과 당뇨와 같은 대사 질환을 막아야 한다. 특히 이런 질병이 있다면 알코올이 간을 손상시키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송 교수는 “술을 끊는 게 좋다. 최소한 절주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강에 자신이 있더라도 과음은 피해야 한다.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음주량을 미리 정해 놓는, 이른바 ‘계획적 음주’를 송 교수는 권했다.
간에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은 어떨까. 송 교수는 이에 대해 부정적이다. 오히려 간에 좋다고 알려진 음식을 먹은 후 병이 악화해 진료실을 찾는 환자가 많단다. 송 교수부터가 건강기능식품에 손을 대지 않는다. 송 교수는 “하루 세끼 신선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하루 세끼 제대로, 절제하면서 먹는 것이 간 건강에 좋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특별한 음식을 먹거나 건강법을 따라한다고 해서 ‘건강 유전자’가 갑자기 좋게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 그보다는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게 건강 유전자를 만드는 더 좋은 방법이란다. 송 교수는 “현대는 결핍이 아닌, 과잉의 시대”라며 “야식부터 끊어야 한다. 각종 영양제나 수명을 늘려준다는 약을 먹으면서 과식하면 간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매일 야근을 하지만 야식은 절대 하지 않는다. 배가 고픈데 어떻게 참을까. 송 교수는 “처음엔 힘들겠지만 익숙해지면 괜찮아진다”며 웃었다.
추가로 운동 한두 가지를 권했다. 다만 죽기 살기로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송 교수는 평소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는다. 하루에도 수십 번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그 운동량도 만만찮다고 한다.
▼ ‘비 수도권 베스트닥터’ 천안 단국대병원 소화기내과 김석배 교수 ▼
충남 천안에 있는 단국대병원 소화기내과 김석배 교수(49)는 비(非)수도권 대학병원에서 간암 분야의 ‘유망주’로 꼽힌다. 현재 이 병원의 건강증진센터 실장인 김 교수는 간암과 지방간 등 소화기 분야의 내과적 치료를 주로 한다. 대한간학회에서 의료정책위원, 학술위원 등을 두루 맡았다. 질병관리본부의 노인 검진 분야 간 질환 전문기술분과 위원으로도 두 차례 활동했다.
간 절제나 이식은 대표적인 외과적 치료다. 내과 치료는 항암 혹은 방사선 치료를 가장 전통적인 방법으로 여긴다. 김 교수에 따르면 최근에는 고주파를 이용해 암 부위를 비 수술요법으로 절제하거나 암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혈관을 차단하는 색전술 등 여러 치료법도 활용된다.
김 교수는 간암 환자를 치료할 때 ‘의학 외적인 요소’를 많이 고려한다. 무슨 뜻일까. 김 교수는 “알코올성 간경변을 동반한 간암 환자가 많은데,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가족들에게 외면 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환자의 상황에 맞춰, 소득이 적으면 가급적 비싸지 않은 치료법을, 가족이 외면하면 환자와 가족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치료법을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치료 효과가 크다는 것.
간암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간수치’를 항상 체크하라는 게 김 교수의 조언이다. 김 교수는 “딱 한 가지만 기억하라”며 “술을 마시거나 비만이 다소 있어 지방간이 있다 해도 간수치가 정상이면 대부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50대 이후 나이가 들면 간수치가 정상이어도 암에 걸릴 수 있다. 따라서 이때부터는 간초음파를 정기적으로 받을 것을 권했다.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