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정대협, 위안부 문제 줄다리기
정작 중요한 할머니들 목소리는 실종
독선과 근본주의가 지금의 사태 초래
열린 태도로 존엄 회복할 지혜 모아야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2011년 정대협이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고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청구권 분쟁을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일본 정부와 위안부 합의에 나선 한국 외교관들은 ‘일본 정부 예산에 의한 배상과 총리의 사죄’를 강력히 요구했다. 아시아 여성기금을 배척한 이유가 이 두 가지였기 때문이다. 2015년 합의문이 발표된 당일, 매스컴의 취재에 응한 한 피해자 할머니는 정부의 뜻에 따르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며칠 후 합의문을 파기하라는 정대협의 입장이 나오자 합의문을 수긍한다는 피해자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2015년 들어 ‘일본 총리의 사죄’라는 한국의 요구를 일본이 수용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도쿄에 퍼지고 있었지만 나는 그 소문을 믿지 않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는 영혼을 파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합의문이 발표되던 당일 내 귀를 믿을 수 없었다. 나는 피해자 할머니들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승리를 거두었다고 생각했다. 늙고 병약한 몸이었지만 놀라운 정신력과 사명감으로 결국 이겼구나 싶어 감동했고, 할머니들과 함께해준 정대협에 감사했다. 이제 와세다대 교정에서 위안부를 왜곡하는 일본 우익 무리를 만나면, 너희 총리 아베가 인정하고 사죄했다는 말로 말문을 막아버릴 심산이었다.
위안부 피해자 중 한 분인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 이후, 성역에 드리워진 금줄을 치우고 성소의 문을 연 사람들은 거기서 가난하고 병약한 노인을 발견하고는 신관들에 분노해서 돌을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역에 대한 맹목적 추종만큼이나 섣부른 단죄 역시 위험하다. 정대협은 위안부 문제를 세상에 알리고,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이 회복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우리가 이 문제를 외면하고 있었을 때 유엔인권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하고 일본 정부를 압박한 것이 정대협이다.
그러나 근본주의자들이 종종 빠지는 함정, 오직 하나의 교리만을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다른 해석을 용납하지 않는 독선에 빠진 것이 오늘의 혼란을 초래한 근본 원인이다. 그리고 정대협을 성역화하고 그들의 신탁에만 의존하면서 그들과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을 낙인찍고 추방한 우리 사회에도 책임이 있다. 지금 내 손에 든 돌은 정대협이 지목한 이단을 향해 던진 돌이기도 하다. 지금은 돌을 들 때가 아니라, 위안부 피해자들이 존엄과 명예를 회복하고 마지막 여생을 평화롭게 지낼 수 있도록, 정대협이 쌓은 지혜와 경험이 헛되이 날아가지 않고 인류를 위해 쓰일 수 있도록 길을 찾아야 할 때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