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대신 배려와 기회가 0.004% 인재 키워
박용 뉴욕 특파원
영은이는 2001년 경남 진주에서 선천성 희귀 망막질환인 ‘레베르 선천성 흑내장’을 갖고 태어났다. 부모는 백일쯤 됐을 때 아이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고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큰 병원에서 아이가 커서 앞을 보지 못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억장이 무너졌다고 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부모는 치료와 교육을 위해 미국행을 선택했다.
영은이는 시야가 터널처럼 좁고 사물이 흐릿해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혼자서는 뛸 수도, 글을 제대로 읽을 수도 없다. 그래도 아버지 손을 붙잡고 달리기를 할 때만큼은 갑갑한 마음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다. 영은이는 2009년 미 버지니아주 초등학교로 전학을 와서 달리기클럽에 가입했다. 낯선 사람과 함께 달리는 게 겁이 났지만 나중에 친구에 대한 믿음을 얻었다.
영은이는 점자나 오디오북으로 공부를 한다. 그래도 2등으로 고교를 졸업할 정도로 성적이 좋았다. 영은이는 학교가 채용한 ‘점자 선생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공부에 필요한 자료나 그래프를 e메일로 보내면 이 전문가가 점자로 만들어서 영은이에게 보내줬다. 뉴저지주는 영은이 같은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점자 자판이 달려 있는 ‘점자 컴퓨터’도 지원해 줬다.
영은이는 2017년 눈이 돼줄 평생 친구도 만났다. 한 시각장애인 지원 비영리단체의 도움으로 안내견 ‘메기’를 분양받았다. 안내견 한 마리를 훈련시키는 데 약 5만 달러(약 6200만 원)의 큰돈이 든다. 이 단체는 미국 민간인들의 기부를 받아 시각장애 학생들을 돕고 있다.
백악관은 장애를 딛고 학업과 비교과 활동에서 두각을 보인 영은이를 이민자의 자녀라는 편견 없이 360만 명의 고교 졸업생 중 0.004%(161명)에게 주어지는 ‘대통령 장학생’으로 뽑았다.
영은이는 올해 9월 프린스턴대에 진학한다. 졸업을 하고 워싱턴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정치가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정치 너드(Nerd·괴짜)’라고 부르는 이 양은 “모든 사람은 신체, 정신, 언어 등에서 어려움 하나씩은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이 희망을 갖고 일어설 수 있도록 정부와 연결해 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영은이는 자신의 의지와 가족의 도움으로 일어섰다. 그런 영은이를 힘차게 달릴 수 있게 밀어준 것은 장애인을 배려하고 기회를 주는 미국의 평범한 이웃과 학교, 시민단체, 정부 시스템이 아니었을까. 0.004% 인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이런 사회적 자본을 먹고 자란다. 우리 사회에 장애를 딛고 거침없이 내달리는 더 많은 영은이가 나오면 좋겠다.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