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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이야기]기후 악당

입력 | 2020-05-30 03:00:00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코로나19로 공기가 깨끗해져 많은 사람이 건강해졌다고 말한다면 바이러스 감염증에 희생된 분들의 고통과 슬픔을 외면하는 냉혹한 악당이라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민망하게도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사람들이 미세먼지 개선으로 수명을 연장할 수 있게 되었다는 팬데믹의 역설에 고개를 끄덕이는 분위기도 분명 존재한다. 나아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실천하기 힘들었던 온실가스 감축이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해 실현 중이라 말하는 호사가들도 있다.

슈퍼히어로 영화에서는 인간보다 환경을 더욱 앞세우는 악당(빌런)이 등장한다. 인간이 마구잡이로 오염시켰기 때문에 지구가 황폐해지고 인간의 삶도 피폐해졌으므로 인구를 줄이는 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이 악당들의 생각이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 등장하는 최종 악당 타노스는 자연 파괴를 막기 위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를 절반으로 줄이는 것이 그나마 살아남을 절반을 위한 것으로 확신해 이를 실행한다.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에서는 환경 테러리스트들이 거대 괴수들을 지구에 퍼뜨려 인구 수를 조절함으로써 대량 멸종을 막으려 한다. ‘아쿠아맨’에서는 해저왕국의 지도자인 옴 왕이 지구 멸망을 막기 위해 인간과 전쟁을 일으킨다.

이처럼 슈퍼히어로 영화에는 악당들이 환경주의자로 등장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환경 파괴 세력이 ‘기후악당(Climate villain)’으로 비난을 받는다. 영국의 기후변화 비정부기구(NGO)인 ‘기후행동추적’은 ‘세계 4대 기후악당 국가’로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한국을 지목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7위이고 1인당 배출량으로는 4위다. 재생에너지발전 비중은 세계 꼴찌이고 미세먼지 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다.

사실 우리나라를 기후악당으로 칭하는 것은 좀 과하다. 12일 열린 국무회의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을 기후악당이라고 칭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악당으로 지칭되려면 악당 나름대로의 캐릭터와 격에 맞아야 한다. 오히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놓고 악당질을 하면서 스스로 기후악당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인간에 의한 지구온난화를 부정하는 기후변화 회의론을 확신하고 있고, 또 그의 신념에 적지 않은 동조자들도 있다. 슈퍼히어로 영화인 배트맨 시리즈의 최신작 ‘조커’에서는 악당인 조커가 사람들을 동화시켜 사람들 스스로 악당으로 변해 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과연 악당의 매력이라도 갖고 있는 것인가. 정부가 화력발전소의 해외 수출을 지원하면서도 국내에서는 기후변화 명분으로 ‘그린뉴딜’을 추진하는 것이 모순된다고 비치지 않을까. 국내에서는 탈원전을 추진하면서 해외에서는 원전을 수출하는 얌체짓을 한다고 손가락질 당하지 않을까. 악당은 동조자라도 있지만 얌체는 친구 없는 외톨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