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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 일치하지 않는 간 이식수술의 대가

입력 | 2020-05-30 03:00:00

[떠오르는 베스트 닥터]<2>송기원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교수




송기원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교수는 평일에는 퇴근하지 않고 병원 연구실에서 잠자는 생활을 15년째 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장면. 의사가 퇴근 후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하는데 ‘콜’이 온다. 응급 환자가 발생했단다. 의사는 식사 도중 병원으로 달려간다.

이런 장면, 송기원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교수(49)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퇴근 자체를 하지 않는다. 병원 연구실에서 새벽까지 연구를 하거나 학회 업무를 보다가 소파에서 눈을 붙인다.

집에는 토요일이 돼야 간다. 그나마 하루다. 일요일에는 병원으로 돌아온다. 가족이 섭섭해 하지 않을까. 송 교수는 “15년이 넘은 습관이라 그런지 가족도 이해한다. 그래도 요즘에는 집에 자주 가는 편”이라고 말했다. 2004년 서울아산병원 간이식 팀에 합류할 때는 한 달에 한 번 집에 갔다고 한다.



○ “환자 생존하는 게 최고의 보상”
송 교수는 간암과 간 이식 분야에서 떠오르는 명의로 꼽힌다. 환자의 절반이 간암 환자다. 이 중 절반은 간경변(간경화)도 심하다. 간 절제나 이식이 대표적인 치료법이다. ‘수술 능력’이 베스트 닥터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 이유다.

9년 전 한 여성이 송 교수를 찾았다. 출산 후에도 부른 배가 가라앉지 않아 다른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간암이란다. 암 세포가 혈관을 압박할 정도로 커져 있었다. 이미 폐로 전이돼 수술 불가 판정을 받았다.

송 교수는 그래도 수술을 결정했다. 우선 간의 일부를 잘라냈다. 이어 협진에 참여한 내과 의사가 항암 치료에 들어갔다. 송 교수는 수술 전에 그 환자와 약속했다. “갓난아기가 성장해 장가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수술은 잘됐고 항암 치료도 무사히 끝났다. 그 환자의 아기는 지금 초등학교 2학년생이다.

간이 담즙을 만들지 못하거나 배출하지 못하면 치명적인 간 손상이 시작된다. ‘담즙정체증’이란 희귀병이다. 15년 전 한 소녀가 이 병에 걸려 간 이식을 받았다. 불운이 겹쳤다. 그로부터 10년 후 병이 재발해 간을 다시 이식받아야 했다. 환자의 가족은 많이 지쳐 있었다. 막대한 수술비를 감당하기도 힘들다 했다.

모두가 포기하려던 차에 송 교수가 나섰다. 가족을 먼저 설득했다. 병원 안팎으로 복지 기금을 물색했다. 뇌사자의 간을 기증받을 수 있는 천운까지 생겼다. 덕분에 간 이식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얼마 전 송 교수는 서른이 된 이 환자로부터 잘살고 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송 교수가 왜 편한 집을 놔두고 고생을 사서 하는지,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환자 때문이다. 위중한 상황이 생겼을 때 즉각 대처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사람의 목숨이 달려있다는 것. 송 교수는 “환자가 생존하는 게 보상이다. 이게 의사의 숙명이니 앞으로도 이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며 웃었다.


○ “혈액형 일치하지 않는 이식 수술의 대가”

송 교수는 의사의 숙명이라며 “환자가 생존하면 보상을 받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아래 사진은 송기원 교수(가운데)가 간이식 수술을 하고 있는 모습. 서울아산병원 제공

송 교수에 따르면 1996년 무렵 서울아산병원에서 혈액형이 일치하지 않는 ‘혈액 부적합 간 이식’ 수술이 처음 시행됐다. 당시 6세의 여자아이가 간의 일부를 이식받았는데, 다행히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어린 나이라 면역 시스템이 확립돼 있지 않았고, 그 덕분에 외부 장기를 잘 받아들였던 것. 하지만 이후에 시행된 다른 간 이식 수술의 경우 1년 생존율이 50∼60%다.

서울아산병원은 간 이식 분야에서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2000년 이후 혈액 부적합 간 이식 성공률도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송 교수는 2008년 11월 본격적으로 간 이식 분야에 뛰어들었다. 그때부터 올 1월까지 서울아산병원은 660건의 혈액 부적합 생체 간이식 수술을 시행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술 기록이다. 이 수술의 상당수를 송 교수가 지휘했다. 수술 후 1년 생존율도 약 98%로 높아졌다. 송 교수는 “수술 직후 사망하는 사례는 거의 없으며 최근 환자들만 상대로 조사하면 5년 생존율도 90%를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 교수의 스승은 간 이식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이승규 교수다. 송 교수는 이 교수를 포함한 스승 세대를 ‘맨땅’에서 치료법을 찾아내고 정착시킨 개척자로 평가했다. 송 교수와 같은 제자 세대의 역할은 무엇일까. 송 교수는 “불가능한 수술이 더 이상 없게 하는 것, 수술 후 생존율을 높이는 것, 그리고 환자의 삶의 질을 올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 교수는 요즘 면역학 분야에 관심이 많다. 인체가 이식된 간을 바이러스와 같은 존재로 인식해 거부할 때가 있다. 이를 면역거부반응이라고 하는데, 이 부작용을 막으려면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한다. 면역억제제는 신장과 심장에 무리를 줄 수 있다. 암을 유발한다는 보고도 나와 있다. 비용도 만만찮다.

환자에 따라 면역거부반응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이식된 간을 받아들이는 이런 현상을 ‘면역관용’이라고 한다. 송 교수는 이 면역관용을 의도적으로 작동시키는 방법을 찾고 있다. 이 방법을 찾는다면 면역억제제를 복용하지 않아도 되고, 나아가 면역 기능을 활용한 면역항암제 개발도 가능해진다.

2018년 송 교수는 유전자 변형 쥐를 대상으로 이 연구에 돌입했다. 사람의 간세포를 쥐에게 투입한 뒤 면역학적 변화를 살피고 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은 언제 가능할까. 송 교수는 “10년 이내에 될 것으로 본다. 내 의사 인생의 마지막 도전”이라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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