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2월 22일
플래시백
‘위빈의 여상이 돼 희창에게 초빙됐던가, 막북의 이릉이 돼 흉노의 포로가 됐던가…(중략)…하늘이시여, 그의 앞에 은하가 가로놓여 있거든 오작교를 내려주시고, 약수로 막혔거든 파랑새를 보내주소서.’
한국 언론사상 최초의 순직기자 장덕준.
중국 정계를 시찰하고 미국의원단을 인터뷰하러 가기 직전인 1920년 7월 27일 장덕준의 모습.
동아일보 창간 주역인 장덕준은 통신부장 겸 조사부장, 논설반 기자로 활약하며 짧은 기간에도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창간 다음날인 1920년 4월 2일자부터 10회 시리즈 ‘조선 소요에 대한 일본여론을 비평함’을 집필해 조선통치에 관한 일본 어용학자들의 논리를 통박했습니다. 8월엔 중국을 방문 중인 미국의원단을 찾아가 스몰 단장을 인터뷰하고 이들이 경성에 오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달해 성사시키는 데 일조했습니다.
장덕준은 폐병을 앓아 일본 유학 시절 요양원 신세를 지는 등 건강이 좋지 않았고 쉽게 흥분하는 성격이어서 동아일보 입사 후 격론을 벌이다 피가래를 토하는 일도 왕왕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정이 많고, 기개와 담력이 남달랐습니다.
그는 1920년 10월 함경북도 지방을 시찰하다 일제가 만주 간도에서 일본영사관 소실을 우리 동포의 소행으로 단정하고 대규모 병력을 출동시켜 한인들을 무차별 학살했다는 비보를 접합니다. 당시 동아일보는 무기정간 중이라 보도할 지면도 없었지만, 그는 “기자의 활동은 중단할 수 없다”며 간도로 향합니다. 1925년 8월 29일자 동아일보는 ‘정 많은 그가! 피 많은 그가! 노모의 간절한 만류를 뿌리치고 위험하고 고단한 길을 단연히 떠나던 심정은…’이라고 이 상황을 전했습니다.
동아일보 창간 10주년 기념일인 1930년 4월 1일 열린 장덕준 추도회.
상해임시정부가 발행한 독립신문 1921년 10월 28일자는 장덕준의 최후에 대해 ‘적의 군병이 말(馬)까지 가지고 와서 함께 가자고 강청(强請)해 부득이 따라간 바 그 후로는 일절 종적이 없어지고 말았는데, 적은 그를 꼬여 끌어내 암살한 일이 확실하다’고 썼습니다. 하지만 그의 가족은 물론, 동아일보 또한 장덕준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1년, 또 1년이 지나도 기적을 바랐지만, 창간 10주년 기념일인 1930년 4월 1일에야 추도회를 갖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그를 놓아주었습니다.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원문
同人(동인)
秋松(추송) 兄(형), 秋松(추송) 兄(형)아. 生耶(생야)아, 存耶(존야)아. 何處(하처)로 去(거)하고 何處(하처)에 住(주)하관대 엇지 生時(생시)에 見(견)치 못하며, 또 엇지 夢裡(몽리)에 逢(봉)치 못하는고. 秋松(추송) 兄(형), 秋松(추송) 兄(형)아. 渭濱(위빈)의 呂尙(여상)이 되야 姬昌(희창)의게 招聘(초빙)이 되얏던가, 漠北(막북)의 李陵(이릉)이 되야 匈奴(흉노)의게 俘虜(부로)가 되얏던가, 아니 原野(원야)에 獅子(사자)를 만나 拒抗(거항)의 勇(용)이 窮(궁)하얏던가, 錮塘(고당)에 毒蛇(독사)를 만나 避身(피신)의 氣(기)가 絶(절)하얏던가, 叢林(총림)에 鷙鳥(지조)를 만나 脫身(탈신)의 銳(예)가 盡(진)하얏던가. 何處(하처)로 去(거)하고 何處(하처)에 住(주)하관대 엇지 信(신)이 無(무)하며, 息(식)이 斷(단)한고?
昨年(작년) 初冬(초동)에는 漢陽(한양)의 夜月(야월)이 비록 離亭(이정)의 飛葉(비엽)을 悲(비)하얏스나 그러나 오히려 關北(관북) 萬里(만리)에 杜絶(두절)한 生民(생민)의 慘(참)을 聞(문)하고 劇孟(극맹)의 家(가)에서 再會(재회)의 歡(환)을 囑(촉)하야 險路危步(험로위보)의 吉凶(길흉)을 卜(복)코저 思(사)치 아니하얏더니, 今年(금년) 新春(신춘)에는 間島(간도)의 寒風(한풍)이 歸鴈(귀안)의 路(노)를 開(개)치 아니하고 다만 空山(공산) 暮雲(모운)에 설리 우는 猩猩(성성)의 소리가 友人(우인)의 銳敏(예민)한 鼓膜(고막)을 치며 凄涼(처량)할 뿐이라. 이에 雪(설)의 朝(조)를 當(당)하야 雪(설)을 詠(영)하고 立(입)하되 雪(설)이 言(언)을 無(무)하고, 風(풍)의 夕(석)을 當(당)하야 風(풍)을 望(망)하고 廳(청)하되 風(풍)이 報(보)가 無(무)하고, 月(월)의 夜(야)를 當(당)하야 月(월)을 懷(회)하고 報(보)하되 月(월)이 影(영)을 畵(화)치 아니하야 孤獨(고독)한 隻影(척영)이 自狀(자상)을 弔慰(조위)할 뿐이니, 그 生(생)을 誰(수)의게 聞(문)하며, 그 存(존)을 誰(수)의게 知(지)하리오. 噫嘻(희희)라. 蒼天(창천) 蒼天(창천)이여, 人事(인사)의 一生(일생)이 果然(과연) 如斯(여사)한가?
天(천)이여, 神(신)이여. 斯人(사인)의 所在(소재)를 斗護(두호)하야 豊盛(풍성)한 恩惠(은혜)를 施(시)하시고, 그 所在(소재)를 그 親(친)의게 또는 그 友(우)의게 傳告(전고)하야 간절한 생각과 熱熱(열열)한 사랑의 憂愁(우수)를 解(해)하는 對象(대상)을 作(작)케 하시며, 저의 所在(소재)가 沙漠(사막)이어든 颶風(구풍)이 吹(취)치 勿(물)케 하시고, 山谷(산곡)이어든 濃霧(농무)가 降(강)치 勿(물)케 하사 저의 精神(정신)을 快(쾌)하게 肉體(육체)를 安(안)하게 하소서.
秋松(추송) 兄(형), 秋松(추송) 兄(형)아. 오래 停刊(정간)이 되얏던 兄(형)의 愛(애)이며 兄(형)의 友(우)인 東亞日報(동아일보)는 續刊(속간)이 되는대 兄(형)은 何處(하처) 去(거)하야 우리 同人(동인)으로 더부러 歡(환)을 또는 憂(우)를 共(공)히 하지 못하는고. 兄(형)이 續刊(속간)의 報(보)를 聞(문)하면 戀人(연인)이 蘇生(소생)함보다 더욱 歡喜(환희)할지오, 經營(경영)의 難(난)을 察(찰)하면 愛子(애자)의 飢啼(기제)하는 소리를 듯는 것가치 그 肝膽(간담)이 찔릴 줄로 知(지)하노라. 그러나 우리 同人(동인)은 險路(험로)에 危步(위보)를 上(상)할 새 心志(심지)가 窮(궁)에서 一層(일층) 堅固(견고)하야 서로 扶助(부조)하고 서로 弔慰(조위)하니 團樂(단락)한 會合(회합)은 時日(시일)을 經(경)할사록 和氣(화기)를 添(첨)하나, 다만 우리 同人(동인)으로 하야금 時時(시시)로 一面(일면)의 恨(한)을 膺(응)케 함은 吾兄(오형) 一人(일인)이 그 堂(당)에 參席(참석)이 無(무)함이로다. 來客(내객)의 接對(접대)를 行(행)할 때와 湯飯(탕반)의 午饌(오찬)을 喫(끽)할 때에 左(좌)로 顧(고)하고 右(우)로 察(찰)하다가 문듯 嗚咽(오열)하니 從此(종차)로 事(사)에 臨(임)하고 心(심)을 論(논)할 時(시)에 우리 同人(동인)이 少一(소일)의 懷(회)를 感(감)하는 그 情況(정황)은 果然(과연) 如何(여하)할고?
兄(형)은 本社(본사)의 猛將(맹장)이며 우리 同人(동인) 중 秀才(수재)이라. 本社(본사)의 剏始(창시)가 兄(형)의 經綸(경륜)에서 出(출)하얏스며, 於間(어간)의 發展(발전)이 또한 兄(형)의 熱誠(열성)과 奮鬪(분투)로 因(인)함이니 兄(형)은 實(실)로 本社(본사)의 産婆(산파)이며, 賢母(현모)이라. 故(고)로 本社(본사)의 從此(종차)로 成長發達(성장발달)도 兄(형)의 力(력)을 賴(뇌)하야 圖(도)코자 하얏스며, 兄(형)도 또 그 全力(전력)을 本社(본사)에 注(주)하야 우리 同人(동인)으로 더부러 苦樂(고락)을 共(공)히 할 뿐만 아니라 그 平生(평생)을 本社(본사)에 投(투)하야 本社(본사)로 하야금 自我(자아)의 生命(생명)을 作(작)코자 하얏나니 兄(형)은 何處(하처)에 在(재)하며, 何處(하처)로 去(거)하얏슬지라도 本社(본사)는 兄(형)의 懷中(회중)에 抱(포)하얏슬 것이오, 또 腦裡(뇌리)에 印(인)하얏슬 줄로 信(신)하노라. 그런 즉 兄(형)은 本紙(본지)가 續刊(속간)이 됨을 知(지)하면 愛子(애자)의 急症(급증)을 救(구)한 것보다, 戀人(연인)의 宿疴(숙아)를 治(치)한 것보다 더욱 歡(환)하며 悅(열)하야 그 사랑의 所在(소재) 우리 同人(동인)의 集會處(집회처)로 瞬刻(순각)을 遲滯(지체)치 아니하고 晝夜(주야) 倍道(배도)하야 來駕(내가)하리라. 蒼天(창천) 蒼天(창천)이여, 저의 前路(전로)에 銀河(은하)가 橫在(횡재)어든 鵲橋(작교)를 賜(사)하시고, 弱水(약수)가 阻隔(조격)이어든 靑鳥(청조)를 與(여)하소서.
秋松(추송) 張兄(장형)은 朝鮮(조선) 靑年(청년)이라. 性(성)은 嚴(엄)하고 志(지)는 堅(견)하고 心(심)은 仁(인)하며 氣(기)는 活(활)하니, 恒常(항상) 朝鮮(조선)을 思(사)하고 憂(우)하야 惻惻(측측)한 志氣(지기)가 外表(외표)에 露出(노출)하며, 體(체)는 中(중)이나 絡(락)은 健(건)하고 質(질)은 强(강)하야 비록 惡疾(악질)을 抱(포)하고 時時(시시)로 血痰(혈담)을 吐(토)하되 能(능)히 그 病(병)을 勝(승)하고 그 痛(통)을 耐(내)하야 席(석)에 安(안)치 아니하고 荊棘(형극)의 道(도)에 社會(사회)의 魔(마)와 惡戰苦鬪(악전고투)하얏나니, 昨年(작년) 嚴冬(엄동)에 北方(북방)의 寒雪(한설)도 畏(외)치 아니하고 그 區域(구역)의 險惡(험악)도 顧(고)치 아니하야 弱質(약질) 單身(단신)으로 毅然(의연)히 程(정)에 登(등)함은 본대 蓄積(축적)한 바 義氣(의기)로 犧牲奉公(희생봉공)의 精神(정신)이 一身(일신)의 苦痛(고통)과 危險(위험)을 秋毫(추호)도 思(사)치 아니함에 在(재)하다.
秋松(추송) 兄(형), 秋松(추송) 兄(형)아. 霜雪(상설)은 去(거)하고 陽春(양춘)이 來(내)하얏나니 來(내)하라, 來(내)하라. 陽春(양춘)은 來(내)하얏스나 四圍(사위)는 寂寂(적적)하고 我懷(아회)는 悠悠(유유)하도다. 高山(고산)에 誰(수)로 더부러 登(등)하며 深淵(심연)에 誰(수)로 더부러 臨(임)할고. 兄(형)이여, 兄(형)이여. 來(내)하라. 南畝(남무)의 起耕(기경)도 兄(형)을 待(대)하고 東疇(동주)의 播種(파종)도 또한 兄(형)을 竢(사)하니, 兄(형)이여 來(내)하라.
널리 우리 兄弟(형제)의게 告(고)하노니 秋松(추송) 張兄(장형)은 當年(당년)이 三十(삼십)이라. 形容(형용)은 憔悴(초췌)하고 體質(체질)은 瘦弱(수약)하되 活潑(활발)한 氣槪(기개)와 猛烈(맹렬)한 膽力(담력)은 人(인)의 志氣(지기)를 壓(압)하며, 喋喋(첩첩)한 口辯(구변)으로 方方(방방)한 調理(조리)는 人(인)의 敬仰(경앙)을 集(집)하며, 그 狀(상)은 그 性(성)을 畵(화)하얏고, 그 性(성)은 그 狀(상)을 印(인)하얏나니 비록 初面(초면)의 人士(인사)이라도 一面(일면)에 張秋松(장추송)인 줄을 知(지)키 難(난)치 아니한지라 斯人(사인)을 何處(하처)에 見(견)하던지 吾儕(오제)의 形便(형편)을 告(고)하고 그 所在(소재)를 傳(전)하야주시오. 噫嘻(희희)라. 靑天(청천)이 無言(무언)하니 그 生(생)을 知(지)치 못하며 人事(인사)가 無道(무도)하니 그 存(존)을 聞(문)치 못하겟도다. 秋松(추송) 兄(형), 秋松(추송) 兄(형)아. 그 生耶(생야)아, 存耶(존야)아. 芳草(방초)에 春歸(춘귀)하나니 그 來(내)하라, 來(내)하라.
秋松(추송) 張德俊(장덕준) 兄(형)은 本社(본사)의 特派員(특파원)으로 昨年(작년) 十月頃(십월경)에 間島(간도) 方面(방면)의 險惡(험악)한 形勢(형세)를 調査(조사)키 爲(위)하야 出張(출장)하얏다가 行方(행방)이 不明(불명)하야 探知(탐지)할 道(도)가 杜絶(두절)되다.
현대문
추송 장덕준 형을 그리워하노라
동인
추송 형, 추송 형. 살아있는가? 온전한가? 대체 어디로 가 어디 살고 있기에 어찌 눈을 떠도 볼 수 없으며, 어찌 꿈속에서도 만날 수 없는가. 추송 형, 추송 형. 위수에서 낚시하던 강태공이 돼 주나라 문왕의 부름을 받았던가, 막북 오랑캐를 치던 전한(前漢)의 이릉이 돼 흉노의 포로가 되었던가, 아니 험한 들판에서 사자를 만나 저항할 용기가 다했던가, 가로막힌 못에서 독사를 만나 피신할 기운이 끊겼던가, 우거진 숲에서 사나운 새를 만나 벗어날 민첩함이 다하고 말았던가. 어디로 가서 어디 살고 있기에 어찌 소식이 없는가? 숨이 끊겼는가?
작년 초겨울 경성의 밤하늘 달은 석별의 자리에 흩날리는 낙엽을 슬퍼했으나, 추송은 만 리 길 함경도에 소식이 끊긴 우리 백성들의 비참함을 듣고 ‘극맹(의협심이 강한 전한시대 사람)의 집’에서 재회의 기쁨을 맡겨놓고 험한 길, 위험한 걸음의 길흉을 점쳐보고자 하지도 않더니, 올해 새봄에는 간도의 찬바람이 돌아가는 기러기의 길목을 막고 다만 저물녘 공산의 구름에 서럽게 우는 성성이 소리가 벗의 예민한 고막을 치며 처량할 뿐이다. 이에 눈 내린 아침, 눈을 읊으며 섰으되 눈은 말이 없고, 바람 부는 저녁, 바람을 바라보며 듣고자 하나 바람은 대답이 없고, 달밤을 맞아 달을 가슴에 품고 걷되 달이 그림자를 그리지 않아 고독한 나의 외그림자만이 나 자신을 위로할 뿐이니, 그의 생사를 누구에게 물으며, 그 존망을 누구에게 알리겠는가. 슬프고 또 슬프도다. 하늘이여, 세상일이라는 게, 한평생이라는 게 과연 이러한가.
하늘이여, 신이여. 이 사람이 있는 곳을 보호하사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고, 그 소재를 친구에게, 벗에게 전해 간절한 생각과 뜨거운 사랑의 근심을 기원하는 대상을 만들게 하시며, 그의 소재가 사막이거든 태풍이 불지 말게 하시고, 산골짜기거든 짙은 안개가 내리지 않게 하시어 그의 정신을 상쾌하게, 육체를 편안하게 하소서.
추송 형, 추송 형. 오랫동안 정간됐던 형의 사랑이자 형의 벗인 동아일보는 속간됐는데 형은 어디로 갔기에 우리 동인과 함께 기쁨과 근심을 함께 하지 못하는가. 형이 동아일보 속간 소식을 들으면 연인이 소생한 것보다 더 환희할 것이요, 경영난을 본다면 사랑하는 자식이 굶주려 우는 소리를 듣는 것같이 마음아파 할 것임을 아노라. 그러나 우리 동인은 험한 길에 위태로운 걸음을 올려놓을 적에 마음에 품은 뜻이 일층 굳세어 서로 돕고 서로 위로하니 단란하고 즐거움은 시일이 지날수록 화기를 더하지만, 다만 우리 동인이 때때로 일면의 한을 품는 것은 우리 추송 형 한 사람이 그 자리에 없기 때문이다. 손님을 맞아 접대할 때도, 장국밥 점심을 먹을 때도 혹시 형이 있을까 좌우로 살피다 문득 오열하곤 했으니 일에 임하고 마음을 논할 때 우리 동인이 작은 회포를 느끼는 그 정황은 과연 어떻겠는가.
형은 동아일보의 맹장이며, 우리 동인 중 뛰어난 인재다. 본사는 형의 경륜에서 시작됐으며, 형의 열성과 분투에 힘입어 발전했으니 형은 실로 본사의 산파이자 어진 어머니다. 따라서 이로부터 본사는 형의 힘에 기대어 성장 발달을 도모하고자 했으며, 형도 또 전력을 본사에 경주해 우리 동인과 함께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 했을 뿐 아니라 평생을 본사에 몸 바쳐 본사로 하여금 자아의 생명을 짓고자 했으니, 형이 어디 있으며 어디로 갔을지라도 본사는 형의 품속에 있을 것이요, 또 뇌리에 박혀있을 줄 믿는다. 그런 즉 형은 동아일보 속간 소식을 알게 되면 사랑하는 자식의 급한 병을 고친 것보다, 연인의 오랜 병을 치료한 것보다 더 기뻐해 그 사랑이 있는 곳, 우리 동인의 집회장소로 일시를 지체하지 않고 밤낮으로 이틀 길을 하루에 재촉해 달려올 것이다. 하늘, 하늘시이여, 그의 앞길에 은하가 가로놓여 있거든 오작교를 내려주시고, 전설의 강 약수가 막혀 통하지 못하거든 파랑새를 보내주소서.
추송 장덕수 형은 조선 청년이다. 성품이 엄하고 뜻은 굳고 마음이 어질며 기운은 활발하니 항상 조선을 생각하고 근심해 간절히 슬퍼하는 뜻과 기백이 외부로 나타나며, 몸은 보통이나 근육은 강건하고 바탕이 강해 비록 나쁜 병을 앓아 때때로 피가래를 토하지만, 능히 그 병을 이기고 그 고통을 인내해 편안한 자리에 앉지 않고 가시투성이 길에 사회의 마귀와 악전고투했으니, 작년 엄동설한에 북방의 찬 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지역의 험악함도 돌아보지 않아 약질 단신으로 의연하게 길에 오른 것은 본디 축적한 바, 의기로 희생하고 공변됨을 받드는 정신이 일신의 고통과 위험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데 있다.
추송 형, 추송 형. 찬 서리와 눈은 물러가고 따뜻한 봄이 왔으니 돌아오라, 돌아오라. 봄이 왔으나 사방은 적적하고 우리의 품은 뜻은 아득히 멀기만 하구나. 누구와 함께 높은 산을 오르며 누구와 깊은 심연에 임할까. 형이여, 형이여. 돌아오라. 남쪽 밭을 가는 일도 형을 기다리고, 동쪽 이랑에 파종하는 일 또한 형을 기다리니 형이여, 돌아오라.
널리 우리 조선 형제에게 알리니, 추송 장덕준 형은 올해 30이다. 생김새는 초췌하고 체질은 파리하고 약하지만 활발한 기개와 맹렬한 담력은 다른 이들을 능히 제압하며, 거침없는 구변으로 정연한 조리는 사람들이 존경하고 우러러볼 만하며, 그 용모는 성품을 그려냈고, 그 성품은 용모를 찍어낸 듯해 비록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단번에 그가 장 추송인 줄 알아보기 어렵지 않으니 이 사람을 어디에서 보던지 우리네 형편을 알리고 그 소재를 전해주시오. 슬프고도 슬프다. 푸른 하늘이 말이 없으니 그의 생사를 알지 못하며, 사람의 일이 도가 없으니 그 존망을 듣지 못하겠구나. 추송 형, 추송 형. 살아있는가? 온전한가? 봄을 맞아 향기롭고 꽃다운 풀도 다시 피었으니 돌아오라, 돌아오라.
추송 장덕준 형은 본사의 특파원으로 작년 10월경 간도 방면의 험악한 형세를 취재하기 위해 출장을 갔다가 행방불명돼 알아낼 길이 두절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