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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장치 떼내고… 가스통옆 화기작업… 김용균법 시행에도 산재 사망 더 늘었다

입력 | 2020-06-01 03:00:00

1분기 근로자 253명 산재로 숨져




지난달 25일 수도권의 한 제조업 공장에서 근로자가 쇠붙이를 용광로에 넣고 있다. 뜨거운 쇳물이 튀어 화상을 입을 수 있지만 이 근로자는 방열복을 입지 않은 채 소매까지 걷고 작업을 했다. 송혜미 기자 1am@donga.com

지난달 25일 수도권의 한 제조업 공장. 근로자 20여 명이 여기저기서 쇠붙이를 녹이거나 용접을 하느라 열기가 가득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공단)이 불시 안전점검(패트롤)을 위해 방문하자 사업주는 “40년 넘게 공장을 운영했지만 사망사고가 한 번도 없었다”며 안전을 장담했다.

하지만 몇 년 전 이곳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고등학생은 기계에 손가락이 절단되는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말 그대로 사망사고가 없었을 뿐, 최근 10년 사이 이런 산업재해가 6번이나 있었다. 사업주는 “소소한 사고”라며 “공장의 문제가 아니라 작업자의 실수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가 둘러본 현장 역시 언제든 사고로 이어질 위험요인이 곳곳에 있었다. 옷자락이 빨려 들어갈 수 있는 표면처리 기계(쇼트기) 주변엔 출입금지 표지가 없었다. 근로자들은 바쁜 걸음으로 쇼트기 근처를 아슬아슬 지나쳤다. 쇠붙이가 가득 담긴 드럼통을 들어올리는 장비는 연결고리가 헐거워 아래를 덮칠 듯 위태롭게 움직였다. 현장 관리자는 액화석유가스(LPG) 통을 등지고 화기를 취급하는 근로자를 보고도 아무 제재도 하지 않았다.

올 1월부터 산업현장의 안전규제를 강화한 이른바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됐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기본적인 안전수칙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이날 방문한 수도권의 또 다른 제조공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금속가공기계(프레스)에는 신체가 들어가면 기계를 멈추는 센서 등 안전장치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공장의 프레스 8대 중 2대에는 안전장치가 없었다. 작업속도가 느려진다는 이유로 사업주가 이를 빼버려서다. 2017년 제주에서 현장실습 중 사망한 고교생 이민호 군도 센서가 없는 프레스에 짓눌려 사고를 당했다. 안전장치가 있는 프레스마저도 2년마다 받아야 하는 안전검사를 제때 받지 않은 상태였다. 이 공장 역시 최근 10년간 3건의 재해가 일어났다.

공단이 올해 50인 미만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진행 중인 패트롤은 과거 산업 재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한 사업장 등 고위험사업장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사업주들은 “사망사고가 없으니 문제가 없다”는 반응으로 일관했다.

이런 안일한 안전인식 때문에 산재사고는 계속되고 있다. 올 1분기에 김용균법이 시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산재사고 사망자는 되레 늘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1∼3월 산재사고 사망 근로자는 253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2명(5.0%) 늘었다. 사망자 10명 중 8명(198명·78.3%)이 50인 미만 영세사업장 소속이었다. 특히 5인 미만 사업장은 사망자가 전년 대비 17명 증가해 증가폭이 가장 컸다.

전문가들은 김용균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영세사업장에 대한 산재 예방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용균법의 골자는 하청에 대한 원청의 안전관리 의무 강화. 따라서 원청이 따로 없는 영세업체는 법 개정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허점이다. 그렇다고 영세업체의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이들은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산재보상금 부담 등에 아예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많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노동대학원장)는 “처벌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사업주의 안전의식을 강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산재 예방의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혜미 기자 1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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