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지역경제]<5> 기로에 선 친환경 농가들
코로나19로 인해 개학이 연기되면서 급식 납품용 친환경 농산물을 키우는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달 22일 충남 아산시 한길농원의 냉장창고에는 납품하지 못한 배 상자가 가득 쌓여 있었다(위 사진). 지난달 26일 경기 고양시에선 농민 염현수 씨가 본인이 직접 폐기 처분한 근대와 청상추 더미를 보며 안타까워했다. 아산=홍진환 jean@donga.com / 고양=송은석 기자
강 씨는 약 3만3000m² 규모 과수원에서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는 유기농 농법으로 배를 키우고 있다. 매년 가을에 수확한 친환경 배의 30∼50%를 그해 가을과 이듬해 봄 서울 학교에 납품해 왔다. 그런데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등교 개학이 연기된 탓에 정성껏 키운 배를 대거 폐기 처분해야 할 처지가 됐다.
○ 학교 급식 비중 큰 친환경 농산물 피해 집중
코로나19로 인한 소비 감소, 외국인 일손 부족 등으로 지역 농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학생들의 등교 연기로 판로 자체가 막혀버린 친환경 농가의 피해가 더 크다. 친환경 농산물은 품질이 더 좋지만 모양이 예쁘지 않아 시중의 일반 농산물과 비교할 때 경쟁력이 떨어진다. 이에 대부분 학교 급식 납품을 위한 계약재배가 이뤄진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1조3000억 원 규모(2018년 기준)의 친환경 농산물 시장 가운데 39%가 학교 급식용이다.
강 씨 농가의 경우, 지난가을 수확한 배로 지금까지 거둬들인 수익은 평소의 70%에 불과하다. 여태 입은 손실도 막대하지만 학교 수업 정상화가 단계적으로 천천히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타격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최근 학생과 교사 중에 확진자가 계속 나오면서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과수원 나무에 앵두만 한 크기의 초록색 배가 주렁주렁 달린 것을 볼 때면 강 씨의 속은 타들어간다.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가을 첫 수확부터 판매가 가능할지 예측이 불가능해서다. 그는 “앞으로 6개월 뒤를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면서 “그렇다고 올해 농사를 포기하고 있을 수도 없지 않으냐”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 개학 기다리며 밭 갈아엎기 수차례
지난달 26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내유동의 한 비닐하우스 앞에는 시든 근대와 청상추 더미가 쌓여 있었다. 염현수 씨(63)가 며칠 전 하우스에서 뽑아서 버린 채소다. 친환경 채소류를 키우는 그는 생산량을 대부분 경기 지역 학교 급식용으로 납품한다. 수확을 못 해 채소가 너무 커져 상품 가치가 떨어지자 결국 뽑아버리고 새로 심은 것이다. 염 씨는 “빨리 자라는 시금치와 얼갈이는 3월 이후 이렇게 뽑아내고 다시 심기를 벌써 수차례 반복했다”며 “이미 갈아엎은 씨앗과 거름값이 다 빚인데 언제 학교가 정상화될지 알 수가 없다”고 답답해했다.경기 지역의 다른 친환경 급식 납품 농가 1200곳도 염 씨와 비슷한 처지다. 경기도친환경농업인연합회에 따르면 경기 지역 농가들이 3∼5월 학교 납품을 하지 못해 본 피해액만 약 71억 원에 이른다.
그나마 최근에는 전남, 충남, 경북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 교육청과 손잡고 가정으로 친환경 농산물 등을 보내주는 ‘급식 꾸러미’ 사업을 진행하면서 농가들의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단발성 지원이라 한계가 있다. 경기도교육청 등 일부 지역에선 농산물 외에 육류나 가공식품까지 꾸러미 대상으로 포함하면서 오히려 계약 재배 농가들이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 외국인 입국 막혀 ‘일손 부족’ 이중고
코로나19로 농촌 인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입국하지 못해 일손이 부족한 것도 농가의 걱정거리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외국인 계절 근로자(C-4, E-8 비자) 3052명이 입국할 예정이었지만 5월 말인 지금까지 한 명도 들어오지 못했다. 5월 초부터 6월 말까지 가장 바쁜 봄 농번기에도 일할 사람을 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올 6월 말까지 외국인 근로자들이 입국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염 씨도 원래 이맘때는 외국인 근로자 3명과 함께 일했는데 2명이 코로나19로 입국을 하지 못해 현재 염 씨 부부와 외국인 근로자 1명만 농사일을 하고 있다. 염 씨는 “학교 급식이 정상화돼 일거리가 많아진다 해도 일손이 부족해 또 걱정”이라고 했다. 각 지자체와 농협, 민간기관에서 일손을 돕겠다며 자원봉사에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아산=남건우 woo@donga.com / 고양=주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