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외교적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미국이 우방국들을 대상으로 이런 브리핑을 자주 합니다. 이란이나 아프가니스탄처럼 우리와 큰 연관이 없어 보이는 사안에 대해서도 수시로 진행하고요. 미국이 자국 정책을 따르라고 압박하는 내용은 없었고, 그럴 분위기도 아니었다니까요.”
미국의 대(對)중국 제재에 동참하라는 메시지가 있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주미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이렇게 말하며 손사래를 쳤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설명을 들었지만 내심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압박이라고 전혀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은 남았다. 이미 화웨이 제재 압박 및 반중 경제블록 구상 등에 동참하라는 미국의 노골적인 요구에 시달려온 한국이 아닌가. 똑같은 브리핑을 들었어도 한국이 받아들이는 메시지가 다른 나라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을 동북아 지역의 ‘린치핀(linchpin·핵심 축)’이라고 부르면서도 막상 한국에 대해서는 협력 방침을 제대로 적용하는 것 같지 않다. 당장 현안으로 걸려 있는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만 해도 1년 가까이 주판알을 튀기며 증액을 거세게 압박하고 있지 않은가. 워싱턴의 싱크탱크 전문가들이 “돈 몇 푼 때문에 주한미군을 용병으로 만들고 한미 동맹을 흔들려는 것이냐”고 비판해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의 머릿속에 그려진 한국의 이미지가 좋은 것도 아니다. 한동안 한국을 ‘부자 나라이면서도 미국을 벗겨 먹는 얄미운 나라’처럼 묘사하던 그는 최근에는 한국의 코로나19 방역 성공 사례가 계속 거론되는 것이 못마땅한 듯 깎아내리는 발언을 이어갔다. 한국을 비교 대상으로 삼아 미국의 코로나19 검사 능력을 자랑하기 바빴다.
대선을 불과 6개월 남긴 트럼프 행정부는 코로나19의 위기관리 실패 논란, 치솟는 실업률, 경기 침체, 인종차별 논란 속 유혈폭동 사태 등에 동시다발적으로 직면해 있다. 쑥대밭이 된 집안 문제에 정신이 없는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국의 이해관계에 신경을 써줄 것이라는 확신도 이제는 갖기 힘들다. 이럴 때일수록 더 예리하게 외교 지형을 살피면서 한국의 실리를 찾아야 할 때이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