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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버린 부모가 돈만 챙겨서야”…‘구하라법’ 재추진 여론 확산

입력 | 2020-06-01 11:31:00

소방관 딸 순직하자 엄마가 거액 유족급여 받아가
전 남편과 큰 딸, 생모 상대로 가사소송 제기
생모 "두딸 방치한적 없어, 전 남편이 막은 것"주장




최근 부양의무를 외면한 부모가 자녀 유산을 받는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가운데 이른바 ‘전북판 구하라 사건’이 발생,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두고 네티즌들은 사실상 불발된 ‘구하라법’ 재추진을 촉구하고 있다.

◇‘구하라법’ 결국 폐기…20년 만에 나타난 친모 상속 받는다

부모나 자식 등에 대한 부양의무를 게을리하면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도록 하는 이른바 ‘구하라법’이 사실상 폐기됐다.

이 법은 가족을 살해하거나 유언장을 위조하는 등 제한적 경우에만 유산 상속 결격 사유를 인정하는 현행 민법에 ‘직계존속 또는 직계비속에 대한 보호 내지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한 자’를 추가하는 것이 골자다.

앞서 가수 구하라씨가 사망한 뒤 20여 년 전 집을 떠난 친모가 나타나 그가 남긴 재산의 절반을 요구하자 친오빠 구호인씨가 지난 3월 “친권과 양육권을 포기한 어머니는 상속 자격이 없다”며 국회에 입법 청원을 올렸다.

이 입법청원은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 소관 상임위로 넘겨졌지만, ‘계속 심사’ 결론이 나면서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대 국회 마지막 회의인 지난 20일 본회의에 상정되지 않으면서 불발됐다.

이에 구씨는 지난 2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구하라법이 만들어져도 우리 가족은 적용받지 못하지만, 평생을 슬프고 아프게 살아갔던 동생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며 21대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현행 민법을 고려해 배우자 없이 사망한 구하라씨의 상속권자는 친부모가 되며 재산을 친부와 친모가 각각 절반씩 상속받는다. 앞서 친부는 자신의 몫을 구씨에게 양도했다.

구씨는 현재 친모의 상속권보다 자식들의 성장에 도움을 줬던 아버지 기여분을 우선으로 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소방관 딸 숨지자 32년 만에 나타나 유족급여 1억 타간 생모

이혼 이후 연락이 끊겼던 생모가 소방관 딸이 순직하자 32년 만에 나타나 유족급여를 받아간 이른바 ‘전북판 구하라’ 사건이 벌어졌다.

숨진 소방관의 아버지와 큰딸은 “딸의 장례식에 오지도 않았던 사람이 뻔뻔하게 돈을 받아갔다”며 거액의 양육비 청구 소송을 냈다.

전주에 사는 A(63)씨는 지난 1월 전주지법 남원지원에 전 부인 B(65)씨를 상대로 양육비 1억8950만원을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B씨와 이혼한 시점부터 두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매달 50원씩 계산해 양육비를 청구했다.

이번 소송은 수도권의 한 소방서에서 일하던 A씨의 둘째 딸(당시 32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에서 비롯됐다. 숨진 딸은 119 구조대원으로 일하며 수백 건의 구조 과정에서 얻은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우울증을 앓다가 가족과 동료 곁을 떠났다.

인사혁신처는 지난해 11월 공무원재해 보상심의위원회를 열고 A씨가 청구한 순직 유족급여 지급을 의결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친모인 B씨에게도 이런 사실이 통보됐고, B씨는 본인 몫으로 나온 유족급여와 둘째 딸 퇴직금 등 약 8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사망할 때까지 매달 유족연금 91만원도 받게 된다.

이를 알게 된 A씨는 지난 1월 전 부인인 B씨를 상대로 양육비를 청구하는 가사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1988년 이혼 이후 단 한 차례도 가족과 만나지 않은 데다, 둘째 딸의 장례식장도 찾아오지 않은 B씨가 유족급여와 퇴직금을 나눠 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딸들을 키우는 동안 양육비를 전혀 주지 않는 등 부모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며 이혼 이후 매달 50만원씩 두 딸에 대한 양육비를 합산해 B씨에게 청구했다.

그러나 B씨는 법원에 낸 답변서를 통해 “양육비 청구는 부당하다”면서 “당시 전업주부로서 아이들을 내버려둔 사실이 없고, 전 남편이 집에서 쫓아내다시피 하며 나와 아이들의 물리적 접촉을 막았다”고 반박했다.

A씨 부녀를 대리하는 강신무 변호사는 “양육 의무를 전혀 하지 않은 부모가 피가 섞였다는 이유만으로 자녀의 유산 상속 권한을 온전히 보장받는 건 현행 국내 사법 제도의 크나 큰 맹점”이라며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이른바 ‘구하라법’이 21대 국회에서는 꼭 처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전주지법 남원지원 가사1단독 심리로 재판과 조정이 진행 중이다. 선고는 오는 7월께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전주=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