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임 논설위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지워진 역사가 될 뻔했던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했고 이를 외면하던 한일 정부의 행동을 이끌어냈다. 한국 시민사회의 척박한 토양 속에서 정대협이 거둔 성과는 여성운동으로서, 시민운동으로서 독보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 할머니가 “30년간 이용당했다”며 피해자 중심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던 활동을 폭로하기 전까지는.
정의연은 1990년 설립된 정대협과 한일 위안부 합의에 반발해 2016년 설립된 정의기억재단이 2년 전 통합해 출범했다. 이번 정부 들어 정의연에 대한 국고보조금은 연간 5억∼6억 원으로 수배가 뛰었다.
한일 위안부 합의 타결 이튿날인 12월 29일.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을 만난 이 할머니는 “당신 뭣 하는 사람이에요? … 이렇게 한다고 알려줘야 할 것 아녜요. 나이 많아서 모른다고 무시하는 거예요?”라고 분개했다.
이후 정의연은 위안부 합의 파기를 주장했고 정부는 합의 후속 절차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가 정부를 좌지우지할 힘을 갖는다면 시민운동은 성공한 것인가. 2000년 초반 시민운동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출신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곳곳을 장악했다. 그 결과는 시민 없는 시민단체였다. 권력을 감시하는 시민단체가 권력이 되면 시민운동은 존재의 본질적인 이유가 없어진다.
학계에서는 2000년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 시행을 시민단체와 정부의 결탁이 시작된 계기로 본다. 재정적 자립이 어려운 NGO를 활성화한다는 취지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시민운동에 독이 됐다. 국고보조금을 선택적으로 주거나 뺏고, 활동가들을 각종 자문단에 참여시키면서 시민사회의 자율성이 크게 훼손됐다. 정권 코드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도는 갈수록 추락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절규에도 국회에 입성한 윤미향 의원은 여성·시민운동가로서 대표성을 상실했다. 코로나 이후 큰 정부의 탄생이 예상되는 가운데 이를 견제할 시민사회가 정의연 사태로 위축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시민운동의 순수성을 의심하게 만든 과오만으로도 윤 의원은 사퇴해야 한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