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 떠나는 조훈현 전 미래통합당 의원
관전팔수(觀戰八手). 훈수꾼이 여덟 수를 더 본다는 뜻이다. 조훈현 전 의원은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바둑이든 정치든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면 서너 수 앞도 안 보인다” 며 “국민이 정치인보다 더 현명한 이유”라고 말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이진구 논설위원
● 4년간 당적이 4번이나 바뀔 정도로 파란의 연속이었다.
숱한 당명 변경과 비상대책위원회. 무위로 돌아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살 길이라 뒀는데 모두 의미 없는 축이었음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 당신은 무사히 마쳐서 다행이지만 당은 전보다 더 망했다.
○ 나야 하수인데 뭘 알겠어. 사람들은 지나가는 말로 신의 한 수가 없냐고 묻지만 정치에 신의 한 수가 따로 있나? 한 수 한 수 정석대로 두지 않고 악수와 꼼수만 둔 결과가 쌓여서 그렇게 된 건데…. 바둑도 묘수보다 실수를 덜한 쪽이 이긴다. 인생도 정치도 마찬가지 아닐까. 현 정부의 숱한 잘못과 오만에도 총선 결과가 그렇게 나온 건 우리가 더 많이 실수했다는 뜻이라고 본다. 우리만 몰랐을 뿐…. (훈수는 좀 안 뒀나.) 할까 말까 목구멍까지 말이 올라온 적은 있는데… 그런데 내가 말이 좀 달린다. 논리적으로 말을 이어야 하는데 말싸움에 약하거든. 그래서 못 했다.
사소취대(捨小取大). 작은 이익을 탐하지 말고 큰 것을 취하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비례 위성정당 창당. 19석을 얻었지만 국민의 마음과는 거리가 멀다. 어느 쪽이 ‘큰 것’인가.
※황 전 대표는 장고 끝에 2월 7일 종로 출마를 선언했다. 서울 광진을에서 당선된 고민정 후보(50.4%)와 오세훈 후보(47.8%)의 차이는 2.6%포인트였다.
● 마지막 모습이라니?
○ 투표 당일 밤에 사퇴했는데… 전체적인 윤곽은 나왔지만 아직 모든 개표가 다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비례대표도 최종적으로 17석일지, 19석일지 모를 때였고…. 책임은 져야겠지만 최종 결과가 나온 뒤에 직무대행도 선임하고 마무리를 진 뒤 물러나도 늦지 않았다.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바둑 두다 진 게 확실하니까 그냥 자리 털고 일어난 거 같은 거지. 그러다 보니 누가 직무대행을 하느냐를 놓고 또 혼선을 빚었지 않나. 지더라도 예의가 있는 건데….
● 이번 총선의 코미디 중 하나가 여야의 비례 위성정당 창당이다. 정치를 더 할 것도 아니라면서 왜 간 건가.
○ 꼼수 맞다. 우리 당도 잘한 일은 아니지만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도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순수한 의도로 밀어붙인 건 아니니까…. 당에서 비례대표용 정당을 만들고 1차로 5명을 보내는 게 계획이었는데 가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나보고 가달라고 하더라고. 난 뭐, 여기나 거기나 매한가지고… 당에 별로 도와준 것도 없어서 그러겠다고 했다. 근데 가니까 또 사람 없다고 사무총장도 하라고 하더라. (당 살림은 모르지 않나.) 그렇지. 그래서 무슨 소리냐고 했는데 별로 할 일도 없으니 그냥 앉아만 있으면 된다고 하더라고? 앉아만 있으면 되긴…. 최고위원에 공천관리부위원장까지 했다. (주변에서 말리지는 않던가.) 뭐라는 말은 없었는데 정치 계속할 생각이냐고 묻는 사람이 많아졌다. 안 그러면 옮길 이유가 없다고 본 거 같다. 4년 내내 안 그러다가 갑자기 사무총장도 하니까… 난 아니지만 그렇게도 보일 수 있겠지.
● 덕분에 고발까지 당했다.
○ 민주당이 정당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한선교 대표와 나를 검찰에 고발했더라고. 미래한국당 창당으로 개정선거법과 국민의 의사가 무력화되고, 자유로운 선거를 방해했다는 건데… 또 중앙선관위의 정당한 공무집행을 방해했다고 공무집행방해죄로도 걸었다. 더불어시민당을 창당하기 전이다. 그땐 있는 욕 없는 욕 다하더니… 결국 자기들도 만들지 않았나.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있을까? 옛날에 코미디언 이주일 씨가 “나보다 더 웃긴 사람들이 많다”고 했던 말이 이해가 되더라. 코미디 한 편 잘 보고 가긴 한 것 같다. (조사는 받았나.) 아직까지 아무 소식이 없다.
※민주당은 2월 13일 한 대표와 사무총장이던 조 의원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한국당 창당에 대해 당시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정치를 장난으로 만드는 것”이라 했고, 이재정 대변인은 “태생적 위헌 정당”이라 했다. 이후 민주당은 3월 18일 더불어시민당을 창당했다.
● 한국당 공천이 사달이 났는데 왜 사전에 조율이 안 되고 발표 후에 난리가 난 건가.
○ 발표 전에 알긴 했지만 공천관리위원이 나 빼고 전부 한 대표 편이라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한국당에 가고 나서 내가 어이가 없었던 게… 최고위원도 5명 중에 3명이 한 대표 쪽이었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한 제어 장치가 전혀 없었던 거다. 공천관리위원 구성도 그렇고 자기 정치를 할 생각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다시 합칠 게 너무 뻔한데 왜 그런 무리수를 뒀을까. 원유철 대표도 통합을 늦추려다 반발을 사고….) 속내야 알 수 없지만… 처음에는 민주당이 비례 위성정당을 안 만들면 한국당이 27석 안팎을 얻을 거란 전망도 있었다. 그러면 민주당, 통합당에 이어 원내 제3당이 되지 않나. 교섭단체도 되고, 국회 부의장 몫도 생기니까 엄청난 메리트가 있는 거지. 전부 비례대표니 탈당도 못하고. 갈 때와 생각이 달라졌겠지. 정치가 그렇더라고.
● 앞으로 뭘 할 건가. 바둑계로 복귀하나.
○ 의원 될 때 한국기원에 휴직계 내고 왔으니까 복직을 해야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회에 나가지는 않겠지만…. 이제는 옛날 실력이 안 나온다. 단수도 안 보일 때가 있으니까. 지금은 실력으로 비교하면 아마 300등도 안 될 거다. 조훈현도 이젠… 통하지 않는다. (스스로 초보라고는 하지만 4년이 지났는데 정치 급수는 어떤가. 여전히 18급인가.) 그건 조금 올려주면 안 되나? 9급? 하하하.
※4년 전 그의 랭킹은 프로기사 380여 명 중 65위였다고 한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